[음식]'장호왕곱창'의 김치찌개…"넥타이부대 줄섰네"

  • 입력 2000년 12월 8일 19시 15분


◇서울 서소문 '장호왕곱창'…서비스는 '삼류'라도 맛은 '일류'

마늘 고추 생강 파 등 갖가지 향신료를 배추와 버무려 만든 채소가공식품, 김치는 같은 재료를 사용하더라도 조리사의 손맛과 숙성비법에 따라 그 맛이 천차만별이다.

날씨가 쌀쌀해진 요즘, 김치찌개를 제법 잘 끓인다고 소문난 도심 속 음식점을 찾게 되면 넥타이 부대들의 ‘자리다툼’이 치열하다.

서울 종로에서 벤처기업을 운영하는 전우권씨(39)의 단골 점심메뉴 중의 하나는 김치찌개. 그는 속이 더부룩할 때면 직원들과 함께 오전 11시 10∼20분경 사무실을 나서 택시나 지하철을 타고 중구 서소문 ‘장호왕곱창’ 식당으로 향한다.

이 집은 고가도로 밑 낡은 건물의 15평 남짓한 공간에 드럼통 원형탁자 10여개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허름한 식당. 하지만 20년동안 전화예약을 받지 않고 오로지 현금결제만을 고집할 정도로 ‘업소 위주’의 경영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요일은 무조건 쉰다.

점심 때 삶은 소내장(안주거리), 김치찌개(식사류) 등 2가지만 내놓고 있지만 평일 오전 11시반경부터 줄서기 진풍경이 으레 펼쳐진다. 오후 2시경까지 점심손님이 밀려든다. 저녁에도 같은 광경이 벌어진다. 창업주가 얼마전 ‘상당한 액수’의 권리금을 받고 비법전수와 함께 가게를 인도했다는 설도 있으나 확인되지 않고 있다.

“추운 바깥에서 20∼30분 기다리는 일은 예사지만 직장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아요. 문전박대를 당할 정도로 서비스가 형편 없는데도 자리를 차지하기 쉽지 않으니 정말 모를 일이에요.”

그는 ‘서비스 삼류’인 이 집의 ‘일류 맛’에 중독된 5년차 단골고객임을 숨기지 않았다.

단골손님들은 이 곳 김치찌개에 대한 특징을 땅속에 묻어둔 독에서 갓 꺼낸 듯한 ‘김장 김치’와 얼리지 않은 돼지고기가 우려낸 시원한 국물 맛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이 집 김치는 김장독이 아닌 길가에 세워 둔 드럼통에서 꺼낸 것들로 2겹 비닐포장과 스티로폼으로 공기와 철저히 차단된 채 보관된다. 한번에 3000∼4000포기씩 대량으로 담가 수개월 동안 길가에 놓아 두어도 마치 땅속에서처럼 깊은 맛이 우러나게 발효된다는 것.

사장 김재하씨(56)는 “너무 바쁘다 보니 손님들에게 일일이 신경을 써주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에요. 그러나 호남지역 황토흙에서 60∼90일간 자란 배추, 태양초 고추, 질좋은 마늘 등 재료를 최고급으로 쓰고 있지요”라고 말할 뿐 더 이상의 ‘비법’ 에 대해서는 함구했다.

이 곳은 대창, 양 등 소내장을 찜통에 삶아 가위로 썩뚝썩뚝 잘라내놓고 있는 일명 ‘짤라’(1접시 5000원)를 안주거리삼아 소주를 간단히 걸친 뒤 얼큰한 김치찌개(1인분 4500원)로 배를 채우는 서민적 분위기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

요리전문 인터넷사이트 ‘쿠켄네트(www.cookand.net)’의 이윤화 콘덴츠팀장은 “김치찌개야말로 언제나 서민들의 입맛을 자극하는 가장 대중적인 전통식품이지요. 인기 맛집들의 공통점은 잘 발효된 김치와 생고기를 사용한다는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박희제기자>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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