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건설업계 '휴대전화 컴퍼니' 난립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8분


충남에 있는 K, C 등 5개 건설업체는 모두 사장이 다른 것으로 돼 있다. 그러나 한 사무실을 쓰고 팩스 번호도 같다. 서울 금천구소재 일반건설업체 D사는 3년 전 설립돼 관공사 몇 건을 따낸 뒤 현재 연락 두절 상태다. 경기지역 A사 사장은 지난해 말 관공사 수주를 앞두고 다른 사람을 대표로 내세워 2개 법인을 새로 설립했다.

▼3인이하업체 30%넘어▼

이들 회사는 ‘휴대전화 컴퍼니’로 의심받는 회사들이다. 공사 입찰을 위해 잠시 회사를 세운 후 공사를 따내면 커미션을 받고 다른 업체에 넘기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체 건설 공사의 85%를 차지하는 10억원 미만 공사의 경우 실적이 전혀 없어도 수주할 수 있는 ‘틈새시장’을 노린다. 달랑 휴대전화 하나만 있는 회사인 셈이다. 가뜩이나 붕괴 위기인 국내 건설업계가 휴대전화 컴퍼니와 같은 부적격 업체의 난립으로 공멸의 위기를 맞고 있다.

건설협회와 건설교통부는 전국 등록업체 실태조사 결과 자본금 3억원에 건설기술자 3인을 고용하는 기준에 못 미치는 업체가 30%가 넘는 966개라고 밝혔다. 사무실을 같이 쓰고 사장이 같지만 법인 이름만 다른 회사도 10%에 가까운 634개사. 아예 공사 실적이 전무하고 사무실이 없는 곳도 681개사에 이른다.

▼공사수주후 커미션만 챙겨▼

이는 건설업 진입 장벽이 낮아진 때문. 97년 건설산업기본법이 개정되면서 사무실이 없어도 건설업체를 설립할 수 있고 99년부터는 등록제가 허가제로 바뀌어 누구나 ‘사장’이 될 수 있게 됐다.

휴대전화 컴퍼니가 늘어나면서 건설업체를 설립해 주는 브로커도 등장해 호황을 누리고 있다. 한 건설업계 임원은 “브로커들이 단돈 800만원이면 건설업체 설립을 대행해 준다”고 말했다.

부산지검 특수부는 지난달 29일 한솔엠엔에이와 금강건업 대표자를 자본금 대납 및 기술자격증 대여 공모 혐의로 구속하고, 관련자 76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기술자 99명도 기술자격증 대여 혐의로 입건했다. 대한건설협회 서기석 팀장은 “부산지검의 사례는 빙산의 일각이며 실제 수주를 위해 임시로 설립한 회사는 전체의 30%에 이를 것”이라고 말했다.

업체 난립으로 가장 심각한 문제는 부실공사. 휴대전화 컴퍼니가 따낸 공사를 다른 업체에 넘겨줄 때 받는 커미션은 공사비의 10%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예정 공사비의 73∼78%선에 낙찰되는 관행을 고려하면 실제 공사비의 60%선에서 공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어 부실 공사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들 업체들은 1∼2년 새 없어지는 사례도 많아 부실 공사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는다.

▼부실공사 등 후유증 심각▼

부적격 업체가 난립하면서 멀쩡한 업체들이 공사를 따내지 못하고 출혈 경쟁을 벌이면서 낭패를 당하고 있다. 이는 건설업계 공멸과 하청업체의 연쇄 부도를 불러오는 구조적인 문제로 지적된다.

일반건설업체 수는 지난 10년 새 8배 이상 늘어 현재 7715개에 이른다. 반면 국내 공사 수주액은 2배 증가에 그쳐 업체당 수주액은 90년 287억원에서 올해 99억원선으로 감소했다. 뒤늦게 정부가 부적격 건설업체 퇴출에 나섰지만 이미 건설업계가 입은 상처가 깊어 건전한 건설업체 양성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이은우기자>libra@donga.com

△건설사 난립방지 대책△

정부는 건설업체들이 등록을 바꿀 때 보증능력 확인서를 내도록 할 계획이다. 건설업체 난립을 막기 위해서다.

국토연구원은 6일 이같은 내용의 개선안을 마련, 공청회를 갖고 건설교통부에 제출했다. 이 개선안에 따르면 일반 건설업체는 10억원, 토목 건축 조경 등 단일 공사 업체는 5억원, 전문 건설업체는 업종별 자본금에 해당되는 금액만큼의 보증능력 확인서를 금융기관으로부터 받아야 한다. 또 시공 경험 여부를 묻지 않고 입찰에 참여할 수 있는 공사의 범위를 기존 10억원에서 3억원으로 낮출 방침이다.

지난해 4월 건설업 면허제가 등록제로 바뀐 후 업체수가 급증해 11월 현재 일반 건설업체수는 7700여개에 이르고 있다. 건교부는 이 조치들이 시행되면 20% 가량의 건설업체들이 면허를 반납할 것으로 추정했다.

<구자룡기자>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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