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식의 과학생각]로봇이 안방에 몰려온다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0분


성탄절이 다가오면 세계 유수의 완구업체들은 산타클로스의 선물을 기다리는 수백만명의 소녀들을 겨냥해 다양한 인형을 선보인다. 마이 리얼 베이비(My Real Baby). 올 겨울 미국 시장에서 가장 주목받는 로봇인형이다. 갓난아기처럼 생겼으며 아기들의 얼굴 표정을 흉내낼 수 있다. 젖병을 입에 물리지 않으면 소리내어 울기도 한다.

▼애완동물서 간병인 역할까지▼

오늘날 세계 장난감 시장의 규모는 235억달러나 된다. 인형제품은 로봇공학의 발달로 갈수록 사람을 닮아 가는 추세다. 특히 1999년 일본 소니의 아이보(Aibo)가 선풍적인 인기몰이를 함에 따라 너도나도 애완로봇을 시장에 선보이고 있다. 아이보는 2500달러짜리 로봇강아지다. 4만5000개가 팔렸다. 발매하자마자 인터넷을 통해 3000개가 몇 분만에 팔릴 정도로 인기였다.

아이보의 성공을 계기로 2000년 하반기부터 일본 기업들, 예컨대 소니 혼다 NEC(일본전기) 옴론 마쓰시타전기 등은 사람처럼 생긴 로봇을 출시했다. 소니가 11월에 발표한 애완로봇(SDR―3X)은 사람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춤을 추고 체조도 하며 일본인들처럼 90도로 허리를 굽혀 인사할 줄도 안다. 키 50㎝에 무게는 5㎏이다. 혼다가 11월에 발표한 아시모(Asimo) 역시 사람처럼 두 발로 뛰고 춤출 수 있다. 키 120㎝에 무게 43㎏.

이들보다 앞서 NEC가 회사 창립 100주년을 기념해 내놓은 달걀 모양의 로봇(R―100)은 사람의 얼굴을 인식하고 일본어 수백개를 알아듣는다. 바퀴로 움직이는 이 로봇은 사람이 말로 지시하면 텔레비전의 채널을 돌리거나 전자우편을 주고받는 능력을 갖고 있다.

옴론과 마쓰시타전기는 각각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는 애완로봇을 개발했다. 노인들의 말벗이 되거나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며 노인들이 아프면 인터넷을 통해 병원에 연결해주기까지 한다.

일본 기업들이 사람을 닮은 로봇 개발에 뛰어난 이유는 일본 사회 특유의 정령 숭배 풍토 때문이라는 분석이 있다. 일본인들은 생물이건 무생물이건 모든 사물이 영혼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길 위의 작은 돌멩이에도 영혼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정도이다. 사람과 기계 사이에 영적인 교류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므로 자신이 소유한 도구나 장비들, 예컨대 개인용컴퓨터 휴대전화 로봇 따위에 사람처럼 이름을 지어준다.

기계를 의인화하려는 일본인의 성향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한 일본이 선진기술을 과감하게 받아들여 세계에서 가장 자동화가 앞선 나라로 탈바꿈하도록 촉매 구실을 했다. 따라서 기계를 친구나 동반자로 생각하는 일본인들은 로봇에게 일자리를 빼앗길지 모른다고 두려워하는 구미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로봇을 최대한 활용해 생산성을 끌어올려 세계 경제대국으로 발돋움했다.

산업용 로봇은 원래 미국에서 개발됐으나 미국 업체들의 관심을 끌지 못한 반면에 일본에서 환영을 받았다. 1970년 세계 최초의 로봇이 작업을 시작한 곳은 일본의 자동차공장이었다. 오늘날 일본은 세계 제1의 로봇왕국이다. 공장에는 세계 전체 수량의 절반을 웃도는 41만대의 로봇이 가동되고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애완로봇의 등장으로 로봇이 공장에서 안방으로 활동무대를 넓힘에 따라 예상되는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20년 동안 사람과 컴퓨터의 심리적 관계를 연구한 미국의 셰리 터클 교수에 따르면 다마곳치의 경우처럼 아이들이 로봇인형을 살아 있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에 성장과정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지 않다.

▼아이들 심리에 악영향 우려도▼

1996년 일본 완구회사 여사원이 개발한 다마곳치는 열쇠고리 모양의 비디오게임 장치이다. 작은 액정화면에 들어 있는 동물인 다마곳치에게 먹이를 주거나 훈련을 시키면서 키우는 전자 애완동물 게임이다. 일본에서 출시 후 10개월만에 1300만개가 팔렸고 국내에서도 한동안 인기가 대단했다. 세계 도처에서 다마곳치의 죽음으로 아이들이 슬픔과 충격을 벗어나지 못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켰다.

마이 리얼 베이비와 같은 로봇인형의 지능은 곤충 수준에 불과하지만 사람처럼 영리한 로봇이 출현하는 것은 시간문제일 따름이다. 노인과 아이들이 안방에서 애완로봇과 동거하는 세상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이인식(과학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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