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그린스펀 한마디에 불붙은 美증시

  • 입력 2000년 12월 6일 18시 30분


미국 나스닥시장이 사상 최고로 폭등했지만 국내 증시에는 산들바람이 부는 것에 그치는 예상 밖의 상황이 전개됐다. 그동안 일반적인 추세로 받아들였던 국내 증시의 미 나스닥시장과의 동조화가 끊어진 것일까?

특히 개인투자자들은 외국인투자자와 기관투자가의 ‘합동 매수’에 매도공세로 맞서면서 철저하게 단기대응을 하는 양상을 나타냈다. 개인들이 증시 반등에 대해 아직 신뢰감을 갖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됐다.

▽지수움직임 정반대 행보〓5일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이 금리 인하를 시사하는 발언을 하면서 나스닥지수는 10.48% 올랐다. 이는 29년 나스닥시장 역사상 최고의 상승폭에 해당하는 것이다. 나스닥시장은 장 초반 부시 후보의 당선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대선 혼란’이 가라앉아 3%정도 올랐다. 장중에 그린스펀 발언이 알려지면서 7% 이상 급등해 ‘그린스펀 효과’가 다시 위세를 발휘했다.

하지만 6일 국내 종합주가지수는 전날보다 0.93포인트 오르는데 그쳤다. 코스닥종합지수도 0.58% 상승해 보합에 머물렀다. 국내뿐만 아니라 일본(1.32%)과 싱가포르(0.86%) 말레이시아(1.65%) 등 아시아 주요 국가의 지수가 보합세였다. 홍콩과 대만은 강세였다.

▽개인투자자 단기매매 주효〓개인투자자들은 이날 2667억원어치를 순매도하면서 그린스펀의 입김을 차단했다. 외국인투자자는 1675억원, 기관투자가는 1145억원어치를 각각 순매수했으나 역부족이었다.

오전에는 외국인과 기관의 매수세로 종합주가지수가 전날보다 23.67포인트가 뛴 540.63까지 치솟았다. 게다가 외국인은 KOSPI 200 지수선물을 5304계약 순매수하면서 지수 상승을 한층 더 부채질했다.

하지만 오후 들어 개인이 투매에 가깝게 매도량을 늘리면서 오름폭이 크게 줄었다. LG투자증권 황창중투자전략팀장은 “지수 500대에서 주식을 산 개인투자자들이 이익을 실현한 것으로 보인다”며 “개인투자자들은 증시 기조에 대해 신뢰를 두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수 급반등은 기대밖〓국내에서 ‘그린스펀 효과’가 약효를 나타내지 못하고 미 나스닥과의 동조화 고리도 약화되면서 연말까지 지수가 500∼550대의 박스권에서 움직일 것으로 보는 견해가 우세하다.

삼성증권 윤용선연구원은 “외국인투자자에게만 의존한 증시 반등 기대는 역시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며 “개인투자자들은 증시가 침체를 털고 상승준비를 마쳤다고 판단하지는 않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우증권 홍성국투자정보부장은 “증시를 둘러싼 해외변수는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이지만 국내 여건은 현재 나아지는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면서도 “당분간 반등의 계기를 잡으려는 시도가 계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진기자>leej@donga.com

▼그린스펀 무슨 말 했기에▼

5일 앨런 그린스펀 미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금리인하 시사 발언으로 미국 금융계는 일순간에 축제 분위기로 돌아섰다.

이날 그린스펀 의장의 뉴욕 연설이 금리인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에 ‘핵폭탄급’ 영향을 미친 것은 “급격한 성장둔화를 경계하고 있다”는 그의 발언 요지가 미국 금융정책의 중대 변화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지난 2년간 미국 경제가 가장 걱정해온 문제는 인플레 위협. 미국 금융당국은 주가 상승, 실업률 하락, 개인소비 증가 등으로 인한 경기 과열을 막기 위해 지난해 6월이후 6차례나 금리 인상을 단행하는 초강력 긴축 정책을 펼쳐왔다.

그러나 올하반기부터 인터넷 거품 붕괴에 따른 주가 하락과 기업수익 감소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FRB가 계속 인플레 위협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을 고수하자 투자자들사이에는 ‘경착륙,’ 즉 급속한 경기침체 우려가 제기됐다.

이번 그린스펀 의장의 발언은 FRB가 인플레 방지에 중점을 둔 금융정책을 공식적으로 포기하고 경기 부양으로 돌아서겠다는 의지를 나타낸다.

일부 금융 전문가들은 그린스펀 의장이 “아직 개인소비 지출은 활발한 상태”라고 말한 점을 들어 금리 인하까지 이어지지 않을 수도 있다는 신중론을 펴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전문가들은 “금융시장의 자산가치 하락이 가계와 기업 지출의 지나친 둔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그린스펀 의장의 지적을 조만간 금리 인하에 대비하라는 메시지로 해석하고 있다. 월스트리트에서는 FRB의 금리인하 가능성을 보다 정확하게 점치기 위해 8일로 예정된 11월 미실업률 발표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경제분석가들은 11월 미실업률이 10월의 3.9%보다 0.1%포인트 상승한 4%에 이를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FRB가 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에서 금융정책 전환을 공식 천명함으로써 충격 완화를 도모한후 내년 3월까지는 0.25%포인트 수준의 금리 인하를 단행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미경기자>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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