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시민없는 시민운동'

  • 입력 2000년 11월 26일 19시 57분


시민운동이 시들하고 풀죽은 모습이라면 결국은 누가 손해보는 것일까. 시민단체가 힘을 쓰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누가 득을 보게 되는 걸까. 오늘의 시민운동에 대한 전문가 및 관계자들의 ‘반성과 자탄’을 통해 생각하게 된다.

‘한국 시민운동의 재정립’이라는 주제로 최근 열린 시민단체대회의 토론은 이런 의미에서 소중한 행사였다. 최근 어딘지 부진해 보이고 시민과 거리가 생기는 듯한 시민운동의 현주소를 점검하는 계기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선 ‘시민도 대안도 없는 운동’으로 흐르고 있다는 자가진단이 나온 것을 주목한다. 말하자면 정부나 정치권 재벌에 대한 비판이 과거처럼 날카롭지도 않고 호소력을 갖지도 못하며, 국민의 호응 또한 시들해진 것을 시민단체 스스로가 꿰뚫어 보고 있다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시민단체 외부에서 ‘명망가들이 모여 언론플레이 위주로 펼치는 시민운동은 한계에 부닥치고 말 것’이라고 해오던 비판과 경고에 귀를 기울인다는 얘기처럼 들린다.

4·13총선 당시 낙천낙선운동으로 기세를 올렸던 시민단체들이 요즘에는 권력의 비리와 부정 등 제 목소리를 내야 할 사안에 대해 제 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권력 없는 하찮은 낱개’들에 불과한 비정부기구(NGO)가 힘을 쓰는 원천은 바로 정부나 재벌이 갖기 어려운 도덕성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도덕성을 수범(垂範)하고 새롭게 다잡는 의미에서 정부 지원을 뿌리치는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당연하다. 시민의 자발성에 바탕을 두고 재원을 마련하지 않고 정부나 기업 어딘가의 지원을 받는 한 어떤 NGO라도 구설거리에서 예외가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 NGO운동의 위기는 도덕성 투명성의 위기에 이어져 있다. 지금의 무력증은 일부 리더의 부도덕한 행위로 깊어진 것도 사실이다.

시민운동은 ‘명망가들의 백화점식 문제제기’에서 벗어나 시민의 참여 속에 전문가를 앞세운 대안 있는 운동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유력한 시민단체가 정당처럼 모든 이슈에 관해 논평성명을 내는 것만 능사로 여기고, 재벌이나 공기업의 폐습인 ‘조직이기주의’와 몸집 불리기에 앞장선다는 따가운 비판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그런 시민단체들의 정치편향과 관료적 병폐 같은 것이 시민을 등지게 만들고, 대안 없는 비판과 주장이 소구력(訴求力)을 떨어뜨려 마침내 오늘의 위기를 초래했다는 지적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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