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실기업 죽어야 경제가 산다

  • 입력 2000년 11월 1일 19시 34분


우리경제를 둘러싼 안팎의 여건이 심상치 않다. 바닥에 떨어진 내수를 끌어올릴만한 재료가 보이지 않고 그나마 어려운 경제를 버텨주던 수출도 반도체값 급락과 미국 시장의 침체로 어려워질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동아건설 퇴출과 현대건설 부도상황 등은 적지않은 충격파를 몰고 올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다가는 불안 심리가 확산돼 경제 위기를 회복이 어려운 지경으로 심화시키지 않을까 우려된다.

경제 살리기는 지금까지의 경제 정책에 대한 철저한 반성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98년말 이후 총선과 남북문제에 얽매여 구조조정이 사실상 중단되고 IMF위기를 조기 극복했다는 자축분위기가 넘치면서 사회 각 계층의 도덕적 해이가 늘어났다. 워크아웃으로 연명하던 동아건설 같은 기업은 정치권에 비자금을 뿌리고 노조는 구조조정에 저항했다.

현대건설의 처리에서도 정부가 남북문제로 코가 꿰여 질질 끌려가는 모습을 보여줬다. 4차례나 자구계획을 내놓았지만 제대로 이루어진 것이 하나도 없고 사주는 어려운 고비마다 외국에 나가 들어오지 않는 식으로 버티기를 했다.

이렇게 근본적인 구조조정이 지연됨으로써 부실을 키우고 급기야 시장의 신뢰를 잃기에 이른 것이다. 대우의 처리도 실기(失機)함으로써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쏟아붓고서도 대우자동차는 아직도 미해결이다.

동아건설이 퇴출되고 정부와 채권단이 법정관리나 출자전환 등을 통해 현대건설의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다는 의지를 드러내자 비로소 시장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31일, 1일 주가가 오르고 외국인 매수세가 살아난 것은 구조조정의 방향이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보여주었다. 사재출연 등 획기적인 태도 변화가 없는 한 어떤 기업에도 원칙을 훼손시키는 예외가 적용돼서는 안된다.

부실기업을 원칙대로 퇴출시키다 보면 실업자 증가, 자금시장 경색, 협력기업의 연쇄도산 등 단기적 부작용이 우려되지만 장기적으로는 이익도 내지 못하면서 빚만 늘어나는 기업은 죽이는 것이 전체 경제를 살리는 길이다.

대우 한보 현대건설 동아건설 쌍용양회 등 ‘빅 5’의 처리는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정부가 이번에야말로 꼼수를 쓰지 않고 원칙대로 구조조정을 밀고 나가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할 수 있다. 채권은행협의회도 3일 퇴출 대상 기업 발표를 앞두고 고민이 많겠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부실기업 처리를 확실히 해야 두 번째 경제위기를 돌파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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