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정현준 펀드 '실세 명단' 밝혀라

  • 입력 2000년 11월 1일 19시 34분


동방금고 불법대출 사건을 둘러싼 의혹의 핵심은 어떤 식으로든 정관계(政官界)의 실세가 개입해 결과적으로 벤처기업의 탈법 불법을 부추기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다. 예상했던 대로 한국디지탈라인 정현준(鄭炫埈)사장의 사설펀드를 통해 의혹의 실마리가 잡히고 있다. 수백억원의 불법대출을 주도한 정사장이 5, 6개의 사설펀드를 설립했고 여기에 유력인사들을 끌어들였다는 것이 이같은 유착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특히 민주당의 실세로 꼽히는 K의원과 또다른 K의원, 원외의 K씨, 차관급인 P씨 등 정관계 인사 10여명이 ‘정현준 펀드’에 가입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보도는 이 사건의 폭발성과 수사초점을 말해준다. 이런 사실은 정치권이 4·13 총선을 앞두고 주가를 조작해 정치자금을 조성했다는 항간의 소문과 어떤 관련이 있는지도 궁금하다.

물론 민주당은 이들의 펀드가입 사실을 부인하고 있고 검찰도 공식적으로는 “더 확인해 봐야 한다”고 말한다. 검찰은 정치인들이 펀드에 가입하는 과정에서 어떤 ‘약속’이 이루어졌는지를 확인해야만 비로소 명단을 밝힐 수 있다는 입장인 것 같다. 펀드에 가입한 것 자체가 위법은 아니기 때문에 당장 명단을 공개하기가 어려우리란 점은 이해가 간다.

검찰로서는 정관계의 유력 인사들이 주식을 공짜로 받았거나 정사장 등으로부터 손실이 나면 보전해 준다는 약속을 받고 금감원 등에 영향력을 행사했는지를 규명하는 것이 당연한 순서일 것이다. 그동안 드러난 정사장의 행태로 미루어 정관계 인사들을 ‘보호막’으로 끌어들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정사장측이 자발적으로 일부 펀드가입자 명단을 검찰에 제출했다는 것도 ‘정치인의 역할’이 있었음을 시사하는 것일 수 있다. 실세 정치인이 포함된 가입자 명단을 내보임으로써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수사에 영향을 주려했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검찰은 무엇보다 정관계 인사들의 펀드가입과 관련된 위법사실을 확인하는데 초점을 맞춰야 하겠지만 그들의 사회적 비중에 비추어 위법사실이 드러나기 전이라도 가입자 명단과 가입 경위, 자금출처 등을 밝혀야 한다는 게 우리의 판단이다. 그러지 않을 경우 시중의 의혹은 더욱 증폭될 것이다.

서민들에게는 자신의 책임아래 투자해야 한다고 위험성을 거듭 경고해 왔으면서 일부 유력 인사들은 그들의 신분을 이용해 땅짚고 헤엄치기식의 재테크에 열중했다면 그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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