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석의 테마무비] 어글리 코리안, 뒤틀린 자화상

  • 입력 2000년 10월 27일 10시 57분


외국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는 상태에서 이런 얘기를 한다는 게 조금은 우습지만,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볼 때 한국 사람들은 좀 유별난 것 같다. 우리는 자주 무한한 애국심과 자부심으로 들뜨지만(한민족의 우수성!), 가끔씩은 자기비하의 나락으로 떨어져 "역시 한국사람들은 안돼" 식의 자조적인 쓴웃음을 짓곤 한다. 이른바 '추한 한국인'. 그 실체를 확인할 기회는 없으나 할리우드 영화는 가끔씩 그 흔적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국처럼 약소(?)국가에 사는 사람들이 외국영화를 보면서 가장 경이로운 순간 중 하나는 영화 속에 한국어가 등장하는 경우다. <고질라>의 참치 캔을 비롯해 <개목걸이>의 보석강도 장면에 등장하는 경찰차(문짝에 한국어로 '경찰'이라고 써 있다), <타락천사>에 나왔던 '부산상회'라는 상호 등을 만날 때는 깜짝깜짝 놀라곤 한다.

하지만 이런 작은 즐거움이 아닌, 하나의 캐릭터 혹은 '인종'으로서 한국인이 등장할 때는 사태가 달라진다. 가장 대표적인 영화는 조엘 슈마허 감독의 <폴링다운>(93)이다. '한국인 비하'라는 이유로 3년간 수입도 하지 못했던 이 영화의 주제는 한국인 비하가 아니라, 백인 중산층 도시인이 느끼는 불안과 절망감이다.

주인공 디펜서는 가족과 직장으로부터 양면공격을 받고 있다. 스트레스가 절정에 달한 그가 분노를 표출하는 방법은 폭력. 뭔가를 때려부수고 싶어하는 그 앞에 우연히 한국인이 있었다. 그가 보기에 한국인은 미국사회를 좀먹는 '돈만 밝히는 존재'다.

이와 비슷한 맥락의 영화가 <똑바로 살아라>(89). 스파이크 리는 이 영화에서 예상외로 흑인과 백인의 갈등을 다루지 않는다. 흑인들은 피자집을 경영하는 이탈리아인에게 "너희들은 흑인에게 피자를 팔아 먹고살고 있다"고 항의하고, 아일랜드계 경찰에 의해 흑인 하나가 죽자 폭동이 일어난다. 이 와중에 그들은 한국인이 경영하는 슈퍼마켓으로 몰려가 '눈 쫙 째진' 한국인에게 "니들도 우리에게 물건 팔아 잘 먹고 잘 산다"는 식의 비난을 퍼붓는다. 당황한 한국인은 "난 흑인이다!"고 말하며 흑인들은 껄껄 웃은 뒤 돌아간다.

<똑바로 살아라>가 비판하는 지점은 한국인의 탐욕스러움이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인은 영어도 잘 못하면서 온갖 생필품 가게를 독점하고 돈을 긁어가는 존재다. 재미있는 것은, 이 영화에서 슈퍼마켓 점원 소니 역을 맡은 스티브 박이다. 그는 이후 <파고>(96)에서 프랜시스 맥도먼드의 옛 일본인 대학 친구 야나기타 역으로 출연했던 나름대로 잘 나가는 한국계 배우인데, 할리우드의 아시아계 배우들에게서 '부정적인 아시아인'의 상을 심어준다는 비판을 받았다. 그는 이후 성명서를 발표해 자신의 과거를 뉘우친다는 반성을 했고, 아시아계 배우들의 결속을 주장하기도 했다.

<아웃브레이크>(95)는 한국의 배가 미 전역에 퍼져있는 바이러스의 진원지라고 설명한다. 이건 '어글리 코리안'이라기 보다 '더티 코리안'에 가깝다.

프랑스 영화에서도 어글리 코리안은 드러난다. <택시>(98)의 한 장면. 잠복근무중인 형사는 이상한 택시 한 대를 발견한다. 후미진 골목, 택시 운전사는 트렁크를 열고 그 안에서 또 한 사람이 나온다. 두 한국인은 24시간을 반으로 쪼개 교대로 운전하고 있었고, 그걸 바라보는 프랑스 형사는 "쟤네 나라가 요즘 힘들대"라며 빈정댄다(당시는 IMF 상황이었다). 이 영화의 제작을 맡은 뤽 베송이 <제5원소>의 한국 개봉 당시 필름을 자른 것에 대한 분풀이로 이런 장면을 삽입했다는 후문이다.

이처럼 과히 기분 좋지 않은 영화들 중에 조금 유별난 장면이 있다. 존 랜디스의 <미녀 드라큐라>(92)에서 보스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은 전자업에 큰 몫을 하지. 그들은 어떤 아이디어든 놓치지 않아. 그들은 상상을 초월해." 여기까지는 한국인의 우수성에 대한 격찬(?)이었지만, 갑자기 보스는 한국제 토스터를 들어 완전히 박살내며 배신자를 겁준다.

김형석(영화칼럼리스트)woodym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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