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은행원 '부익부 빈익빈' 시대

  • 입력 2000년 10월 26일 19시 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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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은행은 최근 들어 직원들의 임금 등 복지와 교육프로그램에 많은 신경을 쓰고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하나은행이 올들어 자산운용기법을 배우기 위해 미국 메릴린치 증권사에 4명의 직원을 연수 보냈다. 그러나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연수 직원들이 짐을 쌌다. 메릴린치가 우리나라에 자산운용사를 세우면서 고급 인력 확보를 위해 연수생을 채용한 것.

당시 옮겨간 직원들은 더 나은 조건에도 물론 관심이 있었지만 은행 합병이 시작되면서 처지가 불안해질 것에 대비해 사전에 준비를 한 성격도 강하다. 김승유(金勝猷)하나은행장은 당시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는 후문이다.

하나은행과 합병을 추진중인 한미은행도 합병시 비슷한 지역의 지점끼리 통합되면서 지점장들이 위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 이 때문에 한미은행은 성과급 직원을 대폭 늘려 고급 인력의 사기진작에 나서고 있다.

한미은행은 채권 주식 외환딜링 등 자산운용부문의 전문직원에 대해 성과급제를 도입한 데 이어 종합금융팀과 벤처투자팀의 전문 직원에 대해서도 성과급제를 실시하고 있다. 이들이 받게될 성과급은 연봉의 100%. 10년차 내외의 행원 연봉이 5000만원인 것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짜리 행원’시대도 멀지 않았다는 것이 은행권의 지적이다.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경영개선 대상은행들이 대대적인 인력감축에 나서고 있는 동안 우량은행들은 오히려 은행 구조조정기에 자리를 박차고 떠날 가능성이 높은 전문 및 고급인력을 잡기 위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다. 특히 임금협상을 앞두고 우량은행과 부실은행간 격차는 더욱 커보인다. 이른바 ‘임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두드러지기 시작한 것.

금융노조는 임단협에서 일률적으로 ‘통상임금 기준 5.5%+α’의 인상안을 제시한 상태. 그러나 한빛 외환 조흥은 깎으면 깎았지 더 올릴 수 없는 입장인 반면 국민 주택 신한 하나 한미 등 우량은행들은 기준을 훨씬 넘는 임금 인상안을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보통 통상임금 기준 7∼9% 인상 선에서 결정될 전망이다.

특히 이들 은행들은 3·4분기(7∼9월) 결산기준으로 1000억원이 훨씬 넘는 당기순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보여 어느 정도의 임금 인상은 불가피한 실정이다. 더구나 이들 은행은 올들어 200∼250%의 상여금을 이미 받은 상태여서 우량은행과 비우량은행 직원들의 임금 격차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 이 때문에 동료들을 떠나보내며 가뜩이나 의기소침해 있는 공적자금 투입은행과 경영개선안 제출은행들은 우량은행들의 임금인상에 더욱 고개가 숙여지고 있다.

외환은행의 한 행원은 “지금은 ‘고개 숙인 은행’이지만 이번 기업퇴출과 2차 은행구조조정이 잘 마무리되면 우리도 대접받을 때가 있을 것이란 기대로 어려운 시기를 견디고 있다”고 말했다.

<박현진기자>witnes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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