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IMF 미시’

  • 입력 2000년 10월 20일 18시 31분


미시(Missy)는 본래 젊은 여성을 친근하게 부르는 말이라고 원어민(原語民)이 쓰는 사전에 나와 있다. 우리말로 옮기면 ‘아가씨’에 가까울 것이다. 한국에서는 이 영어 단어에 별난 의미가 첨가됐다. 386 세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전통의 굴레를 거부하고 자유로운 젊음을 연장하려는 욕망을 표출하기 시작했다. 백화점들은 구매력을 갖춘 이들 젊은 여성을 겨냥한 상품을 개발해놓고 ‘미시족(族)’이라는 용어를 광고에 등장시켰다. 쉽게 풀이하자면 ‘미스’같은 아줌마라는 의미였다.

▷백화점에서 조어(造語)한 미시는 20, 30대 고학력의 신세대 주부를 지칭하는 용어로 점차 자리잡기 시작했다. 돈벌이 상혼은 신선한 이미지를 가진 새로운 단어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미시는 어느새 유흥업소 간판에도 나붙기 시작했다. 미시촌의 원조(元祖)는 과부촌이다. 룸살롱에 일자리를 잡기 어려운 30, 40대 여성들이 나오는 술집을 지칭한다. 과부보다는 미시라는 어휘가 화이트칼라 손님을 끌기에 보다 매혹적이었을 것이다.

▷미시촌 상호를 가진 유흥업소가 갑작스럽게 번성하기 시작한 것은 경제위기가 몰려와 서민들의 삶이 어려워진 무렵이었다. ‘IMF 미시’라는 말까지 생겨났다. 미시촌에서 봉사하는 여성들은 대개 30, 40대 주부들로 2만∼3만원을 받고 술시중 춤시중을 든다. 경기 성남의 미시촌 화재 사고로 숨진 여종업원 6명중 4명이 자녀를 부양하는 주부들이었다. 이들은 자녀의 학비를 벌거나 컴퓨터를 사주기 위해 유흥업소에 나왔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들려온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자녀를 가진 주부가 술집에 나가느냐’고 비난하기는 쉽지만 누가 이들을 향해 돌을 던질 수 있겠는가. 미시촌에서 술을 마시는 남자들은 누구의 남편들인가. 나이트클럽에서 부킹을 하는 주부들은 누구의 아내들인가. 경제위기 이후 빈부의 골이 깊어지면서 서민들의 삶이 허물어지고 있다. 어렵게 가정을 꾸려나가다 참변을 당한 ‘IMF 미시’들은 가슴 아픈 이야기다. 남에게 드러내기는 어려웠지만 술집은 이들에게 ‘생업의 현장’이었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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