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준형/제2의 사직동팀은 없는가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53분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지시로 그 동안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담당해온 ‘사직동팀’이 마침내 폐지되게 됐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들이 부려온 비밀수사조직이 28년 만에 해체되는 것이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매우 잘된 일이다.

우선 명칭부터가 수상했던 이 조직을 없애기로 한 것은 최근 신용보증기금 대출보증 외압의혹 사건과 관련해 사직동팀 수사관이 조사 대상자를 호텔에 불법감금하고 청부수사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등 인권침해와 비리를 저지른 데 따른 정치적 부담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된다. 그런데 사직동팀을 없애기로 한 것이 잘한 일이라면, 그 동안 내사남발과 강압수사에 대한 비난을 무릅쓰고 이 조직을 유지해 온 것이 잘못이라는 판단에 이른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혹자는 사직동팀이 그 동안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감시 또는 견제하는 순기능적 역할을 수행한 측면도 적지 않았다는 점에 주의를 환기시킨다. 다만, 업무수행 과정에서 강압수사와 금품수수 등 문제가 드러났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순기능이란 무엇인가. 현대판 암행어사의 순기능인가.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비리를 감시 또는 견제한다는 순기능적 역할을 내세워 형사사법체계로부터의 예외적 특권을 누리는 수사기관을 운영한 것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대통령 친인척과 고위공직자의 비리는 왜 유독 별도의 특수수사조직에 맡겨야 마음이 놓였던 것일까.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기하기 위해서였단 말인가. 쉬쉬해야 할 다른 정치적 이유가 있었으리라는 것은 삼척동자도 알 만한 일이다.

비밀수사기관은 게슈타포나 KGB 등의 역사가 증언하듯 독재정권의 전유물이었다. 거기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그런 조직은 내사와 경고 또는 보안유지라는 방식으로 운용되는 한, 공명정대한 법 적용을 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될 수밖에 없다. 이를테면 내부자들이 정권에 부담이 될 수 있는 인사들의 비리를 사전에 인지해 대처방안을 강구하는 비밀공작의 방편으로 이용됐을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좋은 의도로 조직을 운용했다면 문제가 없지 않느냐고 반문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음습한 지하공작과 권력의 사유화에 대한 유혹이 따른다는 것은 역사적 경험이다.

사직동팀과 같은 비밀수사조직의 존재가 밝혀진 지도 이미 오래다. 97년 당시 청와대 사정비서관의 지휘 아래 김대중후보 친인척들의 계좌를 추적해 ‘DJ 비자금사건’의 진원지가 됐던 곳이 바로 사직동팀이었다. 그러나 이처럼 야당 시절 김대통령의 폐부를 겨누었던 사직동팀이 정권교체 후에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그것은 현 정부가 그 용도를 재발견해 애용해 왔기 때문일 것이다. 현 정부에서 사직동팀의 내사와 정보수집 활동이 과거 정권에 비해 오히려 강화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김대통령은 취임 초 사직동팀을 폐지하려는 의견을 제시한 적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그럴 경우 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문제의 처리에 어려움이 따른다는 용렬한 건의를 받아들여 폐지를 유보했다는 것이다. 뒤늦게나마 김대통령이 문제를 직시해 해결책을 강구한 것은 천만다행이다.

그러나 불안이 가신 것은 아니다. 비밀수사조직의 필요성을 느껴 청와대 하명사건을 맡겼던 사직동팀은 해체되더라도 혹시 제2, 제3의 사직동팀이 음지에서 움직이지는 않을지 의문이다. 사실 비밀주의와 권력남용의 문제는 모든 수사기관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국가정보원의 전신인 국가안전기획부는 ‘음지에서 일하고,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을 부훈으로 삼은 적이 있다. 음지에서 일하면서 권력 남용과 사유화의 유혹에 넘어간다면 양지를 지향한다는 것은 허황된 일이다. 음지의 권력은 부패하기 쉽다.

사직동팀 폐지의 교훈은 간단명료하다. 형사사법에 관한 한 대통령 친인척이나 고위공직자라고 해서 특례가 용인돼서는 안된다. 사전 수사개입이나 정치적 조율의 여지를 남겨서는 안된다. 비밀의 이점보다는 남용과 비리의 위험이 더 크다. 그것은 결국 비밀공작의 의혹을 불러일으켜 정치적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다. 그런 일은 더욱이 노벨평화상을 받은 대통령이 이끄는 정부가 할 일은 아니다.

홍준형(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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