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정보기자의 반집&한집]흑159에 '철녀' 루이 침몰

  • 입력 2000년 10월 17일 18시 36분


◇ LG정유배 도전기 1국 - 흑 최명훈 : 백 루이나이웨이

흑 159(장면도 흑 4)를 본 루이나이웨이(芮乃偉) 9단의 얼굴이 붉어지기 시작했다. 중앙 백이 조금 엷어졌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이같은 흑의 강습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터. 수읽기를 하면 할수록 그녀의 얼굴은 펴질 줄 몰랐다.

제한시간 5시간이 이미 바닥났다. 이리저리 몸부림을 쳐보지만 흑의 포위망은 더욱 강고해질 뿐. 1분 초읽기까지 버텼으나 20여개가 넘는 거대한 중앙 백대마는 더이상 살 길이 없다는 것을 그녀가 더 잘 느끼고 있다.

공격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공격당하는 아픔을 더 잘 안다. 공격을 하기 위해 두텁게 두지만 공격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도 두텁게 둔다. 뭔가 발이 느린 듯하지만 두텁게 두다가 상대방이 전혀 예상하지 못하는 순간에 강펀치를 날리는 게 루이 9단의 기풍.

그러나 이 바둑은 루이 9단이 중반이후 평소답지 않게 실리를 챙기다 엷어지면서 급소 한방에 대마가 그대로 절명했다. 중앙에 길게 뻗어버린 대마를 바라보는 그녀의 얼굴에는 허망함과 회한이 깃들고 있었다.

◇ 장면도

중반의 고비에서 두어진 백 1은 방심과 과욕이 빚은 패착. 흑이 2, 3을 교환한 뒤 4로 급소를 찔러오자 거대한 중앙 백대마(○)가 살 길이 없다. 백은 1대신 ‘가’ 등으로 상변과 중앙 백의 연결을 꾀해야 했다.

상대인 최명훈 7단은 의자 뒤에 깊게 몸을 묻은 채 녹차 맛을 음미하고 있었다.

최근 몇년 사이에 처음으로 이창호 조훈현 유창혁 서봉수 9단 등 4인방이 모두 탈락한 LG정유배 도전기여서 바둑팬들의 관심도 높았다.

두 사람의 기풍 역시 상극. 막강한 화력을 앞세운 루이 9단과 침착하고 끝내기를 잘하는 최명훈 7단의 대결은 어느 한쪽의 우세를 점치기 힘든 상황이었다.

오후 8시15분. 결국 루이9단이 돌을 던졌다. 복기가 시작됐다. 결론은 하나였다. 흑 159 로 인해 백대마가 살 길이 없었다는 것.

루이 9단은 대국이 시작된 오전 10시부터 복기까지 끝난 오후 9시까지 검토실과 대국실에서 줄곧 바둑을 지켜보던 남편 장주주(江鑄久)과 함께 어두운 한국기원 계단을 내려갔다. 겨우 도전 5번기의 첫판이 끝났을 뿐이라고 부부는 다짐하는 것 같았다.

suh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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