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월드]천수이볜의 대만 어디로?

  • 입력 2000년 10월 16일 18시 34분


《‘중화민국’이란 국호 대신 ‘대만’이란 지명으로 불리는 나라. 그러나 대만은 7월말 현재 외환보유고 1135억달러, 연간 교역규모 2323억달러(99년)의 세계적인 경제대국이자 1인당 국민총생산(GNP) 1만3248달러(99년 추정)규모의 선진국이다. ‘중화민국’ 건국 89주년 기념일인 10월 10일, ‘쌍십절’을 맞아 대만정부는 대대적인 기념행사를 벌였다. 타이중(臺中)공군기지에서는 해외 거주 화교 1만여명을 초청, 프랑스제 최신예 전투기인 ‘미라주 2000’ 시범 비행을 선보이며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는다는 강한 의지를 과시했다.》

▽풍요 속의 고민〓대만 행정원 신문국(국정홍보처에 해당)의 한 고위관리는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소식을 듣고 “남북한처럼 대만과 중국의 관계도 빨리 개선됐으면 좋겠다”며 안타까워했다. 대만은 세계적인 경제대국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위세에 눌려 국제사회에서 홀대를 받고 있다. 9월에는 유엔가입을 여덟번째 시도했지만 미국 등의 반대로 안건으로 올리지도 못했다. 현재 수교중인 29개국은 대부분 남미와 아프리카 등지의 작은 나라다.

대만 경제는 아시아국가의 외환위기 때도 건재했다. 경제성장률은 97년 6.68%, 98년 4.57%, 99년 5.67%를 기록했다. 올해 1·4분기 성장률은 7.92%나 됐다. 컴퓨터 칩과 주변기기를 중심으로 한 전자제품 섬유 정보기기 금속 기계 화학제품 등이 주요 수출품.

그러나 국내 정세는 불안정하다. 올해 5월 민진당 천수이볜(陳水扁)총통이 국민당 일당지배체제를 무너뜨리고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입법원(국회에 해당)위원 221명 중 민진당은 30%, 68명에 불과하다. 소수당의 설움 속에 정책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는 천총통의 지지도는 취임 직후 82%에서 43%로 떨어졌다. 최근 주가 급락사태도 인기하락의 한 요인이다.

양안관계는 대만 독립을 주장해온 천총통 정부가 출범한 뒤 악화됐다. 중국은 ‘하나의 중국’ 원칙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 대화할 수 없으며 대만이 양안간 담판을 무기한 거부하면 무력사용도 불사한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한―대만관계〓쌍십절을 하루 앞둔 9일 수도 타이베이 시내 국부(國父) 쑨원(孫文) 기념관 앞 광장에 들어선 특산품 시장. 수천명의 시민들은 한국의 대중가수 노래가 퍼지는 가운데 쇼핑을 즐겼다. 92년 단교시의 격렬했던 반한 감정과는 사뭇 다른 것이었다. 타이베이 한국대표부 윤해중(尹海中)대표는 “반한 감정이 누그러진 결정적인 계기는 지난해 9월 대지진 때 한국에서 급파된 119구조대가 한 소녀를 극적으로 구해낸 일이었다”고 말했다. 경제 못지 않게 문화 교류도 활발해졌다. 인기그룹 ‘클론’의 인기는 대단하다. 한때 주춤했던 한국 유학생의 숫자도 최근 늘어나 현재 석박사과정 350여명을 포함, 800명 수준에 이른다.

양국간 항공기 운항 제재도 논의되고 있다. 대만은 단교 직후 92년9월 한―대만간 항공기 취항과 한국 항공기의 영공통과를 불허했다. 이에 따라 화물을 수송하기가 힘들고 동남아행 한국 항공기는 중국과 필리핀 영공을 거치느라 연료를 더 많이 쓰고 있다. 대만측은 항공기 운항재개에 대해 “경제문제가 아닌 정치적 문제인 만큼 정부 고위 인사간 교류가 필요하다”고 버티고 있지만 타결 가능성은 점차 커지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대만과 한국간 교역도 늘고 있다. 99년 현재 양국간 총교역규모는 93억2000만달러이며 한국이 33억8000만달러의 흑자를 기록했다. 대만은 한국에 다섯번째로 큰 수출국으로 99년 현재 수출액은 63억5000만달러이다. 현재 타이베이∼가오슝(高雄)구간 고속철도 공사에 삼성건설 등이 참여하는 등 건설 분야 진출도 활발하다.

<타이베이〓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대만의 자랑 신주단지▼

대만의 수도 타이베이에서 서쪽 해안을 따라 건설된 고속도로로 70㎞정도 내려가면 대만 최대의 공업단지인 신주(新竹)과학산업단지가 나온다. 올해로 만들어진지 20년 된 이 단지에는 세계적인 컴퓨터제조업체 에이서를 비롯해 292개 회사가 현재 입주한 상태다. 그동안 이곳에 투자된 비용은 정부투자비를 포함해 210억달러에 이른다. 생산품은 반도체, 컴퓨터와 주변기기, 정보통신, 광학기기, 정밀기계, 생명공학 제품이 주류를 이룬다.

이곳에 입주한 기업의 지난해 수출입 규모는 217억달러로 대만 전체 교역규모의 9%를 차지했다. 국립 칭화(淸華)대와 국립 자오퉁(交通)대가 단지 안에 자리잡고 있어 필요한 연구인력을 제공하는 한편 산학 결합을 통한 첨단신제품 개발을 수행하고 있다. 단지 바로 옆에는 6100여명의 연구인력을 거느린 산업기술연구센터가 있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출 수 있는 첨단기술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첨단기술 위주로 구성된 신주단지의 특성은 인적 구성을 보아도 명확하다. 99년말 현재 근무자 8만2778명의 평균연령은 31세에 불과하다. 박사학위 소지자 1000여명을 포함해 전체 인력의 23%인 1만9000여명이 석박사 이상의 고급인력이다. 수준 높은 연구인력 덕택에 신주단지 내 기업은 98년 대만에서 904건, 미국 일본 등지의 해외에서 788건의 특허기술 등록을 이뤄냈다.

<신주〓조헌주기자>hansc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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