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금감위장의 가벼운 입

  • 입력 2000년 10월 9일 19시 11분


금융당국 책임자의 ‘부적절한’ 말 한마디가 또다시 구설수에 올랐다.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은 7일 밤 “GM측이 홍콩에서 전 대우구조조정협의회 의장 오호근씨를 만나 대우자동차 일괄인수를 위한 인수의향서(LOI)를 제출했다”는 내용을 꺼냈다. 출입기자 5, 6명과 함께 한 저녁식사 자리였다. 대우차 매각실패로 구조조정 계획이 차질을 빚은 상황에서 이 사실은 8일 긴급뉴스로 타전됐다.

청와대측이 허겁지겁 “금감위원장의 실언으로 사실무근”이라고 부인하고 나섰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결국 이위원장은 “발언내용은 사실이지만 국익을 위해 기사 게재를 재고해 달라”며 발언을 시인했다.

이위원장은 지난주 대우차매각 실패의 책임 조사를 지시한 당사자다. 정책당국의 거듭된 설익은 발언이 파문을 부르고 포드측의 7조원대 제시액을 공개한 전임 금감위원장의 ‘아마추어리즘’이 매각실패의 원인(遠因)으로 지적되는 상황을 잠시 잊었던 것일까.

여기까지는 ‘말실수’였다. 정작 문제는 이위원장이 해명과정에서 사실을 왜곡했다는데 있다.

이위원장은 ‘홍콩에서 오호근씨가’ 혹은 ‘인수의향서’라는 말을 먼저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자들이 재차 확인하자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고 시인했다. 또 ‘일괄 매각’이란 말은 꺼내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현장의 기자들은 “이위원장이 일괄매각 방식을 논했다”고 기억했다.

3일 미국에선 대통령선거 후보자 토론회가 열렸다. 두 후보는 경쟁적으로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마치 자기편인 것처럼 말했다. “그린스펀 의장을 만난 뒤 정책을 방향을 잡겠다”(조지 W 부시 후보)거나 “그가 있었기에 95년 멕시코위기를 넘길 수 있었다”(앨 고어 후보)고 말했다. 왜 미국 대통령후보들은 앞다퉈 그린스펀 의장을 거론하는 것일까.

토론회 직후 미국언론은 그린스펀 의장의 정책능력과 함께 신중한 발언으로 말 한마디가 ‘바이블(성경)’이 되는 신뢰감이 미 국민 사이에 형성돼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승련 금융부>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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