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또 농락당하지 않으려면

  • 입력 2000년 10월 3일 19시 05분


미국 포드사가 대우자동차 인수를 포기해 국내경제를 흔들어놓더니 이번에는 한보철강을 인수하겠다던 네이버스 컨소시엄이 해약의사를 표명하고 나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97년 말 외환위기의 단초가 됐던 한보사태가 떠오르기 때문에 이번 매각실패는 더욱 불안하고 충격적인 사건으로 여겨진다.

특히 두 경우 모두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당사자들에게 아무런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도록 되어있다는 것은 대단히 실망스러운 일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지적했듯이 대우차의 경우 계약내용을 꼼꼼히 챙기지 않는 바람에 포드에 농락당했다. 처음에 입찰보증금을 받거나 손해배상에 관한 규정을 가계약형태로라도 확보했더라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 한보의 경우 역시 일방적으로 계약파기를 당하면서도 위약시의 제재조항을 두지 않았기 때문에 해약으로 인한 불이익을 고스란히 우리쪽이 부담하게 됐다.

우리를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바로 그처럼 당하고도 항의 한번 제대로 할 수 없다는 점이다. 포드사는 단순히 우선 협상대상이었을 뿐 양쪽 당사자간에 정식으로 구속력 있는 양수도 계약을 체결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협상을 하다가 수틀리면 얼마든지 손털고 나갈 수 있도록 되어있다. 계약을 그렇게 끌고 간 것은 포드의 능력이자 국제상거래의 냉엄한 현실이다. 협상실력이 부족한 쪽에서 엄청난 손실을 감수해야 하고 그 부담을 다시 국민이 공적자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사실에 허탈감마저 느낀다.

두 경우 모두 매각불발 이후에 대한 대비책과 안전장치를 전혀 마련하지 않았다는 점은 절실하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이번의 뼈저린 경험을 교훈 삼아 우리 사회가 국제 상거래 협상력을 갖춘 전문가를 훈련하고 양성하는 데 더욱 힘을 쏟아야 하는 것도 같은 실수의 재발을 막는 길이다. 어설픈 국내관행에서 벗어나 냉혹한 국제관행에 적응하는 훈련도 요구된다.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대우차와 한보철강의 향후 처리방안이다. 그런데도 진념 재정경제부장관을 비롯한 경제팀과 채권은행단이 당황한 나머지 매각시한을 서둘러 발표해 스스로 발을 묶거나 노출해서는 안될 속내를 드러내는 등 실수를 계속해 국민을 불안케 하고 있다.

어차피 최악의 상황에까지 온 이상 이번 일을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 기업의 가치를 올려 헐값매각을 피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수정하는 방안도 강구되어야 한다. 정부와 채권단이 실수를 반복하지 않도록 찾을 수 있는 모든 대안을 원점에서 검토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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