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봉병’의 세계는 관념적, 추상적이지만 우주의 조화를 상징한다. 하늘의 해와 달은 음양이다. 음양은 우주를 이루고 지속시키는 두 힘이다. 하늘(天)은 하나(一)로 크고(大) 이어져 있다(―). 땅은 뭍과 물 둘(二)로 나뉘어 끊어져 있다(――). 해와 달은 자강불식(自强不息)한다. 하루도 예외 없이 정확한 시간에 주어진 행로를 걷는다. 땅은 후덕재물(厚德載物)이다. 두텁게 쌓여 자애롭게 만물을 실어 기른다.
다섯 봉우리가 있다. 오행(五行)이다. 그 좌우에 흰 폭포 두 줄기가 떨어진다. 물은 햇빛 달빛과 함께 생명의 원천이다. 그 힘이 하늘과 땅 사이의 만물을 자라게 한다. 만물 가운데 가장 신령하고 도덕적인 존재가 사람이다. 그리고 그 많은 사람 가운데 덕이 가장 커서 드높은 존재가 왕이다. 왕은 날마다 ‘오봉병’ 앞에 앉아 경건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하루의 정사에 임한다. 그러면 하늘(天) 땅(地) 사람(人)의 삼재(三才·우주를 이루는 세 바탕)가 갖추어진다.
음양오행은 동양학의 기본이며 사유의 틀이다. 그것은 1000가지 1만 가지로 분화 전개되는데, 인격인 경우 건순오상(健順五常)의 덕이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음양오행을 본받는다는 것은 굳셀 때 굳세고 부드러울 때 부드러우며 항상 인의예지신(仁義禮智信)의 미덕을 실천한다는 뜻이다. 왕은 ‘오봉병’ 앞에서 올곧은 마음을 지녀야 한다. 하늘과 땅과 사람을 꿰뚫는 이치를 내 한 몸에 갖추어야 한다. 그 때 삼재(≡)를 관통하는 대우주의 원리가 사람이라는 소우주 속에서 완성된다.(三+|〓王)
왕이 정좌하면 우주의 조화를 완결짓는 장엄한 참여 예술이 연출된다. 요즘 참여예술(performance)이라면 사람들은 발가벗은 여인이 겹겹이 싸맨 비닐을 하나씩 둘씩 내 던지는 장면을 상상할 것이다. 인간의 참여란 그런 것이 아니다. 순간의 충격으로 세인의 이목을 끌거나 표피적 자극으로 일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다. 진정한 예술은 평범한 삶을 북돋는다. 그리고 궁극적으로 나 자신을 완전히 비우고 겸허하게 자연을 배워 우주의 질서를 완성케 한다. 대지에 굳게 뿌리박고 하늘을 향해 우뚝 솟은 저 붉은 우주목(宇宙木)처럼….
(중앙대 겸임교수) josoh@unite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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