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홍호표/앤드루 보겐헤이건

  • 입력 2000년 9월 3일 18시 33분


앤드루는 미국 뉴욕주 W S 마운트초등학교 6학년이었다. 아버지 대니얼은 스탠퍼드대 출신의 의학박사로 의대 교수이고 어머니 데브라는 학교 사서다. 독일계 미국인 가족으로 성은 보겐헤이건이다.

지금 미국 대통령선거전이 한창이다. 1997년 2월. 빌 클린턴 대통령이 재선돼 취임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앤드루 가족이 우리 집에 와 저녁을 함께 했다. 미국 선거와 백악관 얘기가 나왔다.

우리 가족은 클린턴대통령의 부인을 언급할 때 “힐러리가…” 식으로 말했다. 그런데 앤드루는 반드시 “미세스 클린턴이…”로 시작했다. 대통령을 언급할 때는 꼭 “클린턴대통령이…” 또는 “미스터 클린턴이…”라고 했다. 한번도 대통령 부부를 ‘빌’이나 ‘클린턴’ 또는 ‘힐러리’라고 부르지 않았다.

사실 이날의 화제는 클린턴대통령에 대한 ‘용비어천가’가 아니었다. 민주당의 정치자금 모금과 관련한 스캔들과 대통령의 여성편력 등이 주요 화제였다. 앤드루 가족은 대통령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말하면서도 꼭 경칭을 사용했다.

얼마 뒤 우리 가족이 앤드루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게 됐다. 음식을 먹으려 하는데 갑자기 앤드루의 어머니 데브라가 아들을 “잠깐 보자”며 식탁에서 일어섰다. 데브라는 앤드루를 호되게 야단치기 시작했다.

“너 왜 버릇없이 어른보다 먼저 포크를 들고 음식을 먹느냐!”

“잘못했습니다.”

앤드루가 쩔쩔맸다. 변명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식탁으로 돌아와 얌전히 어른들이 수저를 든 뒤 따라 먹기 시작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는 ‘각하’ ‘영부인’ ‘총재님’이라고 못해 안달이다. 그러나 ‘우리끼리’ 만나면 ‘김대중’ ‘이희호’ ‘이회창’하고 부른다. 또 ‘그분’ 앞에서는 ‘회장님’ ‘사모님’ ‘선생님’하며 깍듯이 모신다. 돌아서서 ‘우리끼리’ 만나면 존칭은 고사하고 이름도 제대로 부르지 않는다. 이 경우 성(姓)이 생략된 윗사람의 이름 뒤에 무슨 단어를 붙이는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물론 이 시대에는 자(字)나 호(號)가 흔히 쓰이지 않기 때문에 부르기가 마땅치 않다는 이유도 있다. 그러나 양심적으로 그것은 진짜 이유가 아니다.

우리는 길거리를 걷다가 당황해 하는 경우가 있다. 뒤에 오던 젊은이가 왼쪽 옆으로 추월해 앞을 가로질러 오른쪽으로 지나갈 때다. 젊은이가 다리의 가속페달을 가볍게 밟을 때 나이든 이는 힘겹게 급브레이크를 밟아야 한다.

직장인들이 식사할 때 아랫사람이 50대 윗사람보다 밥과 반찬에 먼저 손이 가기도 한다. 오늘의 나이 든 이들은 디지털의 논리에 밀려 ‘무장해제 된’ 탓인지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나 보다. 한 윗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논리적으로 뭐가 잘못됐는지 설명할 수 없다. 한가지 분명한 것은 내 기분이 좋지 않다는 점이다. 머릿속으로 생각한다. ‘도대체 어떤 집안 출신일까’하고….”

우리는 이런 것들을 ‘밥상머리 교육’이라 불러왔다. 앤드루의 어머니 데브라가 미국의 식탁에서 실천하고 있던 그것이다. 50년 만에 이뤄진 남북이산가족 상봉은 우리 사회가 잠시 잊고 지냈던 효와 가족의 문제를 한번 생각하게 했다.

추석이 다가온다. 오랜만에 가족이 한자리에 모인다. 장유유서(長幼有序)는 그 옛날 아날로그문화가 아니다. 예의바른 ‘남의 아이’를 보면 두렵다.

홍호표<부국장대우 문화부장>hp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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