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장관 친척'의 거액대출 의혹

  • 입력 2000년 8월 27일 18시 36분


한빛은행 관악지점에서 3명의 기업인에게 463억원을 불법 대출해주는 과정에 정 관계 고위 인사가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사회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이들 3명 중 101억원을 대출받은 박모씨는 ‘박지원 문화관광부장관의 조카’라고 사칭하고 다녔고 관악지점장은 그것을 사실로 믿었다고 한다.

검찰은 불법대출에 직접 연루된 지점장과 대리 그리고 박씨 등 3명만을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를 마무리지을 방침인 것 같다. 당초 검찰은 대출금 회수 등을 위해 박씨를 불구속으로 수사하려다가 ‘박장관의 친척’이라는 주장이 새어나오면서 전격적으로 구속했다. 외압(外壓)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박장관에게 불똥이 튀는 것을 막기 위해 검찰이 수사를 서두르는 인상을 준다.

박장관은 “굳이 촌수를 따지자면 35촌쯤 되는 먼 친척으로 철저히 수사하면 모든 것이 밝혀질 것”이라고 해명했다. 물론 박장관은 선의의 피해자일 수 있다. 그럴수록 철저한 수사를 통해 진상이 명명백백하게 규명돼야 한다. 박장관이 현 정부에서 차지하는 위치로 볼 때 검찰이 신속한 수사 종결에만 급급하다 보면 시중의 의혹을 오히려 키울 수도 있다.

이 사건에서 외압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한 핵심은 대출자금의 사용처다. 검찰이 여기에 손도 대보지 않고 수사를 종결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고발내용에 국한해 조사하는 검찰 조사부의 성격상 어렵다면 특수부로 넘겨서라도 대출자금의 사용처를 비롯한 갖가지 의혹을 풀어줄 수 있는 조사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특히 101억원이나 되는 거액을 불법으로 대출해주면서 받은 돈이 기껏 1100여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 지점장은 박씨 회사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이라고 판단하고 기(旣)대출금을 회수하기 위해 추가 대출할 수밖에 없었다고 검찰에서 진술하고 있지만 박씨의 회사는 불법대출을 받은 세 회사 중에서도 경영이 가장 부실했다.

구속된 관악지점장이 박장관의 조카임을 사칭하는 말에 넘어가 이렇게 무리한 불법대출이 이루어졌다면 이것 또한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장관 조카’라는 말 한마디에 휘둘려 100억원대의 대출이 이루어지는 풍토에서 은행 개혁은 요원하기만 하다.

검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거액대출 과정에서의 외압 존재 여부, 대출자금의 사용처, 대출을 받은 업자 3명의 거래관계 등 의문점을 해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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