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경기자의 씨네닷컴]'오네긴'-냉소하는 자가 맞이한 인생의 잔인함

  • 입력 2000년 8월 27일 14시 31분


나이 들수록 자주 듣고, 하게 되는 말 가운데 하나는 "사는 게 다 그런거지,뭐"하는 표현이다. 이런 말을 하게 될 때의 맥락은 대개 성취하지 못한 꿈, 식어버린 열정, 스스로의 힘으로 어쩌지 못하는 대상에 대한 패배를 쓸쓸하게 인정할 때가 아닌가 싶다.

"사는 게 다 그렇지"라고 말하는 횟수가 잦아질 때 가끔씩 나는 내게 '우아한 냉소'에 대한 선망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냉소는 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삶이 고통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취하는 위악적 제스처일지도 모른다.

과거의 상처를 통해 세상을 다 알아버렸다고 생각하고, 더 이상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사랑과 성실함, 헌신같은 가치의 무게를 가볍게 다루며 무엇에든, 누구에게든 그저 스쳐 지나갈 정도의 거리에서만 머무르려는 태도 같은 것 말이다. 구질구질한 감정 따위가 생겨날 여지를 스스로 만들지 않으니, 냉소하는 자들은 대체로 세련되고 '쿨'하다.

그러나 얼마전 비디오로 출시된 영화 '오네긴'을 보면서, 난 꽤 익숙해져가던 냉소의 제스처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

러시아의 문호 알렉산더 푸시킨의 산문시 '예브게니 오네긴'이 원작인 '오네긴'은 한 사람에게는 너무 빨리, 한 사람에게는 너무 늦게 찾아온 사랑의 비극을 그렸다. 잠깐 옆길로 새자면, '오네긴'은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랄프 파인즈가 주연을 맡고 그의 누나인 마사 파인즈가 이 영화로 감독에 데뷔했으며 친척뻘쯤 되어 보이는 매그너스 파인즈가 음악을 맡은 '파인즈 가족'의 영화다.

영화의 첫 장면에서부터 러시아 귀족인 주인공 오네긴의 냉소적인 태도는 분명히 드러난다. 부자인 삼촌의 병문안을 갔다 돌아오는 마차 안에서 오네긴은 "지겹다. 삼촌을 볼 때마다 언제 돌아가시려나 하는 생각 뿐이다…. 이런 내게 악마가 언제 찾아올까…"를 생각한다.

바람둥이에다 무엇에도 큰 의미를 두지 않는 오네긴은 촌스러운 것을 경멸하면서도, 도시의 화려함과 살롱에서의 시 낭송, 무도회에 염증을 느껴 죽은 삼촌이 물려준 시골의 대저택에 눌러 앉는다.

오네긴은 새로 사귄 친구 블라디미르를 통해 알게된 아름다운 타티아나에게 호감을 갖게 되지만 더 이상 마음을 열지 않는 반면, 타티아나는 도회적이고 싸늘한 매력을 지닌 오네긴을 보며 사랑의 열병에 사로잡힌다.

타티아나는 영혼을 사로잡는 불안과 흥분을 억누르지 못해 거친 숨을 몰아쉬며 오네긴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편지를 쓰지만, 오네긴의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없다. 편지를 돌려주러 온 오네긴은 "난 사랑이나 결혼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라며 매몰차게 말한다. "이런 일의 순서는 고백을 한 다음 키스가 이어지고, 그 다음 결혼을 해 가정을 갖게 되고, 곧 지루해지고, 간통을 하게 된다. 그게 당신이 꿈꾸는 미래인가?"

타티아나가 "난 사랑을 믿는다"고 간절하게 말하지만 오네긴은 "당신 가슴속의 나는 당신이 만들어낸 이미지일 뿐이다. 내 마음엔 그 어떤 애절함도 없다"고 말하며 떠나 버린다. 자신 역시 타티아나에게 매료됐으면서도 오네긴은 열정의 파국, 사랑이 식은 이후의 메마른 잿더미처럼 건조해질 미래를 미리 두려워하고 사랑을 믿지 않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러나 타티아나의 늙은 이모의 말대로 "인생은 잔인한 것"이다. 오네긴은 누구에게든,무엇에게든 깊은 관계를 맺는 걸 꺼렸지만, 의도하지 않은 결투 끝에 블라디미르를 죽이게 되고 번민에 휩싸여 세상을 떠돌다 몇 년만에 돌아와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된 타티아나와 재회한다.

이번에 사랑의 열병에 휩싸인 사람은 오네긴이다. 삶이 공허해도 살아남기 위해 싸늘한 귀부인이 된 타티아나에게 오네긴은 필사적으로 매달리며 사랑을 고백한다.

오네긴은 자신의 말처럼 무엇에도 사로잡히지 않고 다만 "스쳐 지나가는 사람"이길 원했으나 잔인한 인생은 누구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 두지 않는다. 귀족적인 냉소를 삶의 태도로 선택했던 그도 의도하지 않게 누군가를 죽이고, 뒤늦게 찾아온 사랑의 감정 앞에 스스로를 추스르지 못한다.

'오네긴'을 보며 나는 내 안의 오네긴을 느낀다. 냉소의 제스처는 어쩌면 고통에 대한 공포와 짝을 이루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열망하는 대상에 다가가기보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자신을 연민의 대상으로 삼으며 한발짝 물러서는 태도, 겨우 견디고 있을 때 "끔찍하게 견디고 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진정한 고통과 대면하도록 하는 것을 포기하는 태도가 냉소 아닐까.

관조하는 태도로 인생이 스쳐 지나가기를 바라는 것과, 상처투성이가 될지언정 자신의 모든 것을 던지는 것. 어느 쪽이 옳다고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오네긴'은 누구도 인생을 스쳐 지나갈 수 없으며 피했다고 생각했던 고통은 언젠가는 다른 방식으로 다시 찾아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그러니, 어떻게 살아야 할까….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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