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SK 김원형 1승 "아빠되더니 달라졌네"

  • 입력 2000년 8월 23일 18시 50분


23일 새벽 광주 신양파크호텔. ‘어린 왕자’ 김원형(27·SK)은 밤새 뜬눈으로 마음속 격랑을 달래고 있었다.

이게 얼마 만인가. 불과 몇 시간전 자신의 손으로 직접 거둔 승리가 믿어지지 않았다. 잠을 자면 천신만고 끝에 따낸 승리가 날아가 버릴 것만 같은 어리석은 마음까지 들었다.

91년 초 전주고를 졸업한 뒤 곧바로 프로에 뛰어든 김원형은 프로 10년 차의 중견투수. 곱상한 외모에 1m76, 72㎏의 아담한 체격에도 불같은 강속구와 폭포수처럼 떨어지는 파워 커브를 앞세워 프로야구를 대표하는 청춘스타로 자리잡았던 그이지만 22일 광주 해태전에서 올린 승리는 자신의 통산 69승 중 가장 값진 것임이 분명했다.

올 시즌 11패를 포함해 지난해 5월 이후 14연패의 사슬을 끊는 단비 같은 1승. 8회 말 구원 등판한 그는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았지만 스코어가 3―2로 앞선 뒤여서 평소 같으면 승리투수가 되지 못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선발 박상근은 동점에서 물러나고 나머지 3명의 투수는 공 몇 개씩을 던지고 물러나 ‘가장 효과적인 투구를 한 투수’라는 기록원의 결정에 의해 그가 행운의 승리투수가 된 것.

김원형은 98년 12승7패 13세이브를 올리며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했지만 이듬해 7월10일 대전 한화전에서 장종훈의 직선타구에 얼굴을 정통으로 맞아 코뼈가 부서지고 왼쪽 광대뼈가 함몰되는 중상을 당한 뒤 극심한 슬럼프의 터널로 빠져들었다. 수 차례에 걸친 수술과 재활훈련을 거쳐 올해 신생팀 SK에 합류한 그는 지난 겨울 그 누구보다 열심히 몸을 만들었지만 자신감이 생기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예전보다 구위가 나빠진 것 같지도 않은데 늘어만 가는 패전의 멍에.

그러나 김원형의 눈빛은 이달 초 꿈에도 그리던 아들이 태어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슬럼프 때와 마찬가지로 구위가 특별히 나아진 것 같지도 않은데 그의 투구는 어느새 예전의 당당했던 모습을 되찾고 있었다.

결국 8월에만 8경기에 나가 1승1패 3세이브에 평균자책 2.51의 뛰어난 성적을 거둔 김원형은 ‘실력보다 중요한 게 자신감’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14연패의 값비싼 대가를 치른 끝에 깨달은 셈이었다.

<장환수기자>zangpab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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