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공동경비구역JSA' 18세미만 불가…아리송한 결정

  • 입력 2000년 8월 22일 18시 49분


최근 영상물등급위원회는 9월9일 개봉될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감독 박찬욱)에 대해 청소년은 볼 수 없는 ‘18세미만 관람불가’결정을 내렸다. 등급위의 한 위원은 그 이유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잔인하며, 남북한 병사들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왕래한다는 묘사가 청소년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21일 시사회를 통해 공개된 이 영화를 보고 나니 등급위의 결정에 의구심이 들었다.

우선 등급위의 한 위원은 잔인한 묘사의 사례로 “이미 쓰러진 북한군에게 계속 총을 쏴대는 것”을 꼽았다. 그러나 영화를 보면 이는 쌍칼로 적의 목을 날려버리는 ‘글래디에이터’(15세이상 관람가), 이미 쓰러진 적을 도끼로 난도질하는 ‘패트리어트’(〃)의 표현 수위에도 한참 못미친다.

또 공동경비구역 내 남북한 병사들의 접촉은 1998년 김훈 중위 의문사 사건을 통해 실제 상황으로 이미 겪었던 일이다. 더욱이 ‘공동경비구역 JSA’는 남북한 병사들의 불법 접촉을 ‘장려’하는 영화가 아니라 결국 동족끼리 총부리를 겨눌 수 밖에 없는 분단의 비극을 다루고 화해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남한 병사가 북한 병사를 만나게 되는 건, 비무장지대 수색 도중 지뢰를 밟아 대열에서 낙오된 이수혁병장(이병헌 분)을 북한군의 오경필중사(송강호)가 도와주면서부터이다. 감사의 편지를 돌에 묶어 날리던 이병장은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 초소에 놀러가기까지 하지만 결국 이들의 비밀스러운 만남은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초래하고 만다.

등급위의 한 위원은 “청소년은 남한 병사가 북한군 초계소에 놀러가는 묘사를 현실과 착각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15세 이상의 청소년이라면 허구적 극영화와 현실을 구분할 정도의 분별력은 갖고 있는 것 아닐까.

1996년 헌법재판소가 영화 사전심의에 대해 위헌 판정을 내릴 때 사전 등급심사를 인정한 것은 음란, 폭력 영화의 난무를 막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등급위는 “남북이 대치하고 있는 현실을 전혀 감안하지 않고 남북한 병사의 만남을 리얼하게 그려 청소년에게 보여주기 곤란하다”는 이유를 들며 사실상 ‘내용에 대한 검열’까지 감행했다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등급위는 자신의 위상에 대해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남북정상회담과 남북이산가족의 만남 등이 이뤄지고 있긴 하지만 휴전선의 냉엄한 대치현실을 무시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등급위가 본연의 임무인 ‘음란 폭력 감시’에서 벗어나는 것이 표현의 자유를 지킨다는 측면에서 과연 올바른 일일까.

<김희경기자>susan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