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현대에 대한 불신

  • 입력 2000년 8월 20일 19시 07분


현대그룹이 18일 오후 느닷없이 정주영(鄭周永)전명예회장의 자동차 지분 가운데 6.1%를 직접 처분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달 중 채권단에 넘겨 팔겠다고 불과 5일 전에 약속한 자구안을 수정한 것. 금융시장의 수많은 눈이 현대에 다시 쏠리고 있다.

사실 현대측이 수정한 계획대로 실천한다면 ‘자동차 계열분리’라는 결과에는 별로 차이가 없다. 그런데도 금융시장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현대가 또 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 때문이다. 현대가 제3자 매각의 모양새만 갖추어 놓고 이면계약을 통해 ‘내일’을 도모하는 게 아니냐는 것.

만약 이런 의구심이 사실로 확인된다면 금융시장은 3월 형제의 경영권 다툼으로 시작된 ‘현대 악몽’을 다시 겪을 우려가 높다. 현대가 공중 분해될 수도 있다.

시장의 이런 반응에 대해 현대측은 “왜 우리의 발표는 무조건 의심부터 하고 보느냐”며 “매각 방법만 다를 뿐 결과는 같다”고 말한다.

채권은행단이 제각기 다른 매각 조건을 내세우는 등 절차상 복잡한 일이 많아 현대가 직접 국내외 금융기관이나 펀드에 매각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도 뒤따른다. 현대 구조조정본부측은 이번주까지 결말을 내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외환은행측은 “현대로부터 공식적인 협의 제의를 받은 것은 아니므로 공식 제의가 들어오면 검토를 하겠다”는 입장이다. 현대자동차 주식을 사들인 기관의 면면을 살펴보고 이를 받아들일 것인지 결정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매수자와 매각조건을 살펴보면 현대의 ‘진정한’ 의도를 알 수 있다는 것.

금융 시장과 주채권은행의 이런 반응은 ‘3부자 동시 퇴진’‘6월말 자동차 계열 분리’ 등 현대측으로부터 몇 번이나 속은 것과 무관하지 않다. ‘단순 솔직하다’는 현대의 이미지는 금융시장에서 어느새 ‘거짓말쟁이 양치기 소년’으로 바뀌었다.

시장이 이번 주 현대의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이병기<경제부>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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