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경택칼럼]속으로 우는 사람들

  • 입력 2000년 8월 16일 19시 33분


엊그제의 눈물은 기쁨과 감격의 눈물이었다. 50년동안 쌓인 한(恨)의 눈물이기도 했다. 내일 이산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은 짧은 만남에 대한 아쉬움과 언제 또 만나게 될지 모르는 안타까움의 눈물일 것이다. 이번에 혈육 상봉의 꿈을 이룬 이산가족들은 세계인들이 지켜보는 무대위에서 TV카메라의 조명을 받으며 뜨겁게 포옹하고 마음껏 울었다.

반면 무대뒤에서 소리없이 눈물을 흘린 사람들이 휠씬 더 많았을 것이다. 우선 이산의 아픔이야 똑 같지만 컴퓨터 추첨에서 떨어져 이번 기회를 놓치고 다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7만6000여명이나 된다. 정확히 남측에서 상봉 신청을 한 사람이 7만6793명, 이중 100명만 뽑혔으니까 7만6693명이 기다리고 있는 셈이다.

마음 속으로 울음을 삼키는 사람들 중에는 ‘또 다른 이산가족’이 있다. 이른바 납북자 및 국군포로가족들이다. 특히 대부분 어부들인 납북자가족들은 비전향 장기수도 북으로 송환되는 마당에 아무 죄없이 끌려간 사람들은 생사 확인조차 못하니 답답하기 짝이 없다고 호소한다.

‘남북관계 잘 풀린다고…’

속으로 우는 사람들은 또 있다. 이산가족의 상봉 광경을 보면서 착잡한 심정을 달래지 못한 사람들, 그들은 남북의 열전과 냉전 과정에서의 각종 테러로 남편과 아빠를 잃은 부인과 자식들이다.

어쨌든 새천년 첫 광복절의 이산가족만남은 남북이 대결의 시대를 극복하고 화해협력시대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는 상징적 사건이다. 남북관계를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켜 나가기위해서는 이번 상봉에서 보여준 민족적 에너지를 분단 극복의 힘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그것은 지도자들이 선도해야 할 몫이다. 내부적으로는 국민대화합을 실현하는 것이다. 김대중대통령은 이번 8·15경축사에서 ‘남북이 화해 협력을 이루고 있는 마당에 우리 내부에서 국민 화합을 이루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 우리 현실은 어떤가. 화합보다는 갈등이 심하게 나타나는 현장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우선 뭇사람들의 시선이 온통 이산가족 상봉에 쏠리고 전국 곳곳에서 다양한 광복절 축하 행사가 펼쳐지고 있던 15일 오후, 대학로에는 2만여명의 노동자들이 모여들었다. 민주노총이 주최한 ‘공안탄압분쇄 전국노동자대회’다. 이들은 집회를 마친 후 광화문으로 나가 ‘야간투쟁’을 벌일 계획이었으나 경찰의 제지로 을지로입구쯤에서 해산했다. 왜? 하필이면 이산가족도 만나고 하는 뜻깊은 날, 광복절 축제가 예정돼 있는 광화문으로 진출하려 했나. 이들은 한마디로 ‘남북관계만 잘 풀리면 장땡이냐. 왜 노동자를 폭력으로 짓밟고 모른 체 하느냐’는 것이다.

나흘간의 잔치가 끝나면

민주노총 단병호위원장은 20여일전부터 서울역에서 단식 농성을 하고 있다. 이들의 주장은 △롯데호텔과 건강보험공단에 진주하고 있는 경찰 철수와 노사 실질 교섭을 통한 단체교섭 타결 △롯데호텔 등에서의 파업 폭력진압 책임자인 이무영경찰청장 해임 △폭력 진압과 경찰의 단병호위원장 폭행에 대한 정부 관계자의 사과 등이다. 롯데호텔의 파업은 두달이상 계속돼 노사 모두 엄청난 손실을 보고 있다.

물론 노사문제는 양쪽 모두 할 얘기가 많다. ‘폭력진압’에 대해서도 경찰은 과잉 진압이 없었고 불법 파업에 대한 정당한 법집행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다른 것은 몰라도 롯데호텔에 경찰 병력이 투입되는 과정에서 완전히 투항한 노조원들에게 폭행을 가하는 장면이 TV화면을 통해 생생하게 드러났다.

노동자들이 분노하는 원인은 보다 근본적인 데에 있다. IMF위기를 겪으면서 빈부 격차가 심해져 이른바 20대80현상이 심화되고, 실업률이 최근 3%대로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의 비중은 늘어나는 등 결국 노동자와 서민들만 살기가 더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민주사회에서 크고 작은 갈등이 표출되는 것은 당연하다. 다만 이를 얼마나 슬기롭게 조정하고 풀어나가느냐에 그 사회의 성숙도가 달려 있다. 그 갈등을 잘 풀어 나가는 것이 정치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날치기’당한 정치는 실종된 상태다. 국민을 위한 의약분업이라면서 중병에 걸린 환자가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는 현실이 하루 이틀 계속되는 게 아닌데도 정치는 없다.

속으로 우는 사람들의 눈물을 씻어 줄 정치를 살려내야 한다. 나흘간의 상봉 잔치가 끝나면 우리 안을 제대로 살펴보자. 통일을 향한 힘도 우리 안에서 나와야 한다.

<어경택 논설실장>euhk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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