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엔화 약세 원인과 전망-동서대 김희호 교수

  • 입력 2000년 8월 16일 15시 03분


일본중앙은행의 금리인상에도 불구하고 엔화가치가 약세를 보이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외환전문가들은 일본이 제로금리정책을 포기하면서 당분간 엔화가 강세를 보일 것으로 예상했었다.엔화약세의 원인과 전망을 동서대학교 국제통상학과 김 희호 교수(삼성경제연구소 국제경제위원)의 글을 통해 살펴본다.<편집자주>

엔-달러 환율이 16일 현재 도쿄 외환시장에서 109엔대로 올라서는 등 일본 소고 백화점 도산 때 환율인 106.93엔에서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이러한 엔화 약세는 일본 경기 회복에 대한 불안감, 일본 기업들의 연쇄도산, 그리고 일본정부에 대한 신뢰감 상실 등으로 시작되었지만 세계 경제, 특히 미국 경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엔화 약세 분위기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보여진다.

지속적인 엔화 약세를 가져오는 가장 큰 원인은 첫째, 미국과 일본의 경제 성장률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1994년 이후 미국경제는 전후 최대의 호황을 구가하고 있으며 4년 연속 연 4%의 경이적인 경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는 반면 일본은 지난 4년간 마이너스 성장을 보이다가 올해 들어 겨우 회복될 기미를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환율은 경제의 펀더멘털을 그대로 반영하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성장의 격차는 달러 강세와 일본 엔화의 약세를 가져왔다.

둘째는 미국과 일본의 금리 격차가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 경제의 과열과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 연방은행은 금리를 지속적으로 상승시켜왔다. 이에 반해 일본은 수년간 지속된 경기 침체에서 벗어나고 소비와 투자를 부양하기 위해 제로 금리를 유지해왔다. 미국과 일본 금리의 지속적인 격차는 일본에서 미국으로 자본을 유출시키게 되고 결국 달러 대비 엔화 약세를 가져왔다.

셋째, 엔화 약세는 미국의 금리 인상정책과 맞물려 미국과 유럽의 용인 하에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국의 금리인상 정책은 단순히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고 미국 주가를 진정시킨다는 의미 이외에 미국 경제가 안고 있는 딜레마를 그대로 노출시키고 있다. 미국경제의 문제는 미국 경제 호황이 투자나 생산에 의해 건실하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주가 상승을 바탕으로 한 일시적인 소득과 소비의 상승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 증시의 폭락은 미국 소비와 경제의 급속한 침체로 이어질 수 있으며 이것이 미국 경제의 거품 붕괴 시나리오이다. 미국 정부의 지속적인 금리인상은 해외 자본을 미국으로 유입시켜 미국의 낮은 저축률을 메워주면서 미국 증시 활황을 견인하고 있는 것이다. 즉, 미국의 금리 상승정책은 미국 주가를 진정 시키는 것과 동시에 미국 증시의 급속한 침체를 막기 위한 양면적인 수단이며 칼날 위에 서있는 미국 경제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일본의 금리 상승은 이러한 미국의 금리인상 정책에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으므로 미국과 유럽이 원하고 있지 않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정부는 올해 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지난 10여 년 간 미국경제정책의 기조인 강한 달러 정책을 고수할 것으로 전망된다. 강한 달러 정책은 자본의 실효수익률을 증가시켜서 해외 자본을 미국으로 유입시키는 환율 정책이며 금리인상 정책과 더불어 미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일본 엔화 약세를 가져온 일본 경제 내부의 문제로서는 먼저 일본 경제에 유동성의 급격한 팽창을 들 수 있다. 일본 경제가 극심한 침체를 보여왔던 1997년-1998년에 소비와 투자를 살리기 위해 일본 정부는 통화량 증가를 통해 금리를 인하해 왔다. 올들어 일본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면서 팽창된 유동성은 물가 상승과 일본 엔화 가치 하락을 가져왔다. 최근 들어 일본 경기가 회복된다는 사실은 틀림없이 일본 엔화의 강세 요인이다. 문제는 일본 경제회복에 대해 불안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다. 경기의 장기적 회복세를 알리는 설비투자의 본격적인 증가가 아직 없고 소매업과 서비스 업종 등 비제조업과 중소기업업종이 아직 회복세를 타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최근 소고 백화점 부도 사태이후 취약한 일본 경제 구조가 노출되면서 아직 일본 경기가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 아니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러한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불안감은 엔화 약세를 당분간 지속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소고백화점 부도사태로 인해 촉발된 부실 채권 처리에 대해 일본 정부의 일관성 없는 정책이 금융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으며 엔화 약세를 부추기고 있다. 적어도 단기적으로 소고백화점의 도산은 하청기업의 도산과 금융기관의 부실로 이어지고 결국 기업 신용도 하락과 금융시장의 경색을 가져올 수 있다.

미국경기의 연착륙 가능성이 점쳐지고 있고 일본 경기의 불안감이 여전히 자리잡고 있어서 일본 엔화 약세는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경기가 회복되는 기미를 보이면서 금리 인상을 계획했던 일본 정부는 일본기업의 연쇄적 도산과 부실 채권의 급증으로 일본 경기가 다시 침체로 들어설 것이 우려되고 있다. 당초 8월 11일 예정된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제로금리를 그대로 유지할 것으로 전망됐던 것도 이런 이유다.

미국과 유럽은 일본 엔화 약세를 용인하는 분위기다.미국은 대선 때까지 지속적인 금리 상승과 강한 달러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미국으로 자금유입이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여 엔화 약세와 달러화의 강세가 예상된다. 일본 경기 회복에 대한 불안감이 사라지면 3분기에 엔화의 소폭 강세가 점쳐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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