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충식/일제 치하 '35년'?

  • 입력 2000년 8월 14일 19시 06분


며칠전 필자의 칼럼 한 대목에 '일제 36년' 이라고 쓴 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는 이메일이 왔다. 이메일을 보낸 독자는 정확히는 35년이니 바로잡아야 하지 않느냐는 것이었다. 일제가 한국을 집어삼킨게 1910년 8월29일이다. 경술 국치(國恥)란 바로 그 시기를 말한다. 그리고 해방이 1945년 8월15일이므로 정확히 일제가 한국을 지배한 기간은 34년 11개월 남짓이라는 계산이다. 따라서 우리가 흔히 쓰는 일제 36년은 허구의 숫자라는 것이다.

▷그런데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일제 36년' 이라고 말하고 있다. 최근 방북 언론사 대표단과 환담하는 자리에서 그렇게 말했다. 이북에서도 보통 '일제 35년' 이라고 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왜 해방후부터 36년으로 남북 민족에 공히 각인된 것일까. '반만년 유구한 역사' 에 부끄럽기 짝이 없는 이민족 지배기간이, 줄여도 분이 풀리지 않을 판에 오히려 1년이나 늘려 계산하다니.

▷그 답은 아무래도 한국식 나이 계산에서 찾아야 할것같다. 낳은 해를 포함해서 '햇수' 로 헤아리는게 관행이다. 그래서 갓난 아이도 0살이 아니라 한 살이되는 식으로 나이는 서양식보다 늘 한 살이 더 많다. '일제 36년' 도 국치의 해와 해방된 해를 합쳐 햇수로 말한다고 하면 틀린 것이 아니다. 문제는 정확한 일본의 통치 '기간' 과 햇수로 헤아리기를 혼동 한데서 빚어진 것이다.

▷일제 지배는 을사조약(1905년)에서부터 헤아려 41년이라는 주장도 있다. 나아가 강화도조약체결(1876년)이후 반(半식)민지화 기간까지 합쳐 70년에 이른다고도 한다. 북한에서도 보통 '36년' 으로 말하지만, 공식적으로는 일본의 조선강점 '40여년' (조선중앙방송 보도)이라고 을사조약을 기산점으로 잡는다. 광복 55주년을 맞는 이 아침, 이런 저런 일로 피지배기간을 떠올리는 감회는 착잡하다. 문제는 기간 논란일수 만은 없다. 더 중요한 것은 '일제 지배' 를 입버릇처럼 되풀이하면서 '남 탓' 만을 강조 하는데 있다. 나라를 내주고 만 '내 탓' 을 철저히 가리면서 이제 해나가야 할 '우리 몫' 을 다짐하는 일이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김충식 논설위원> seesch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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