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꽂이]'파리,생쥐,그리고 인간'…생명의 오묘함을 깨달아라

  • 입력 2000년 8월 4일 18시 32분


프랑수아 자콥은 내가 학창시절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 중의 하나인 ‘우연과 필연’의 저자 자크 모노와 함께 유전암호 해독에 관한 연구로 1965년 노벨 생리 및 의학상을 수상했던 프랑스 생물학자다. ‘파리, 생쥐, 그리고 인간’은 이 노학자의 혜안을 통해 20세기가 낳은 화려한 분자생물학의 발달이 21세기에는 어떻게 다윈의 진화론으로 재무장하여 진정한 의미의 ‘현대생물학’으로 승화될 것인지를 보여준다.

소설가 염상섭은 ‘표본실의 청개구리’를 그렸지만 생물학, 그 중에서도 인체생물학의 발달에 파리와 생쥐만큼 큰 공을 세운 동물은 또 없을 것이다. 유전학 실험실의 터줏대감인 노랑초파리는 이제 야외보다 실험실에 더 많이 살고 있어 그곳을 ‘자생지’로 표기해야 할 판이다. 양, 소, 돼지 등이 이미 복제되었지만 생쥐의 복제가 어려운 것은 인간의 복제도 그리 간단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자콥은 이 책의 맨 마지막 문단에서 인간을 ‘핵산과 기억, 욕망과 단백질의 가공할 혼합물’이라고 규정하며 20세기가 핵산과 단백질의 세기였다면 21세기 관심사는 기억과 욕망이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마냥 환원적(reductionist)으로만 치닫던 생물학이 이제 비로소 창발적(emergent) 현상들을 설명하기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화학반응만 들여다보던 물리, 화학의 시녀들이 드디어 그 오묘한 생명현상을 다룰 수 있는 ‘생물학자’로 거듭나고 있다.

얼마전 인간유전자 지도에 관한 연구의 중간 발표가 있었다. 이제 몇년 후면 완전해독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장차 이 ‘신의 언어’로 풀어헤칠 온갖 생명의 비밀 중에서 난자와 정자가 결합하여 만들어진 하나의 수정란 속의 DNA가 무려 10조개의 세포들을 만들어 적재적소에 배치하며 한 인간을 빚어내는 과정보다 더 신비로운 비밀이 또 있을까. 그 10조개의 세포덩어리들이 한데 모여 엮어내는 삶이라는 오묘함은 또 어떤가.

최근 선진국의 생물학계는 분자생물학에 바탕을 둔 이른바 기능생물학과 진화유전학, 분류학, 생태학 등의 진화생물학 분야들을 한데 묶는 회오리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버클리, 시카고, 텍사스 대학들을 필두로 많은 대학들이 생명현상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체제로 탈바꿈하고 있다. 우리 대학들도 생물학 관련학과들을 통합하고 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아직도 나뭇잎만 붙들고 앉아 숲 전체를 보지 못하는, 아니 보기를 거부하는 ‘옛날’ 생물학자들이 적지 않아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울대교수·생물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