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Digital]상표권 침해 분쟁 '아리송한 잣대'

  • 입력 2000년 8월 3일 19시 10분


일간지에 근무하는 S기자(30). 그는 3일 아침 ‘오리엔트’ 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잠을 깨 ‘오랄B’ 칫솔에 ‘페리오’ 치약으로 양치질을 한 다음 ‘다이알’ 비누로 세수를 하고 ‘송월’ 타월로 얼굴을 닦았다. ‘크라운베이커리’ 빵과 ‘맥심’ 커피로 아침식사를 한 뒤 ‘시에로’ 승용차를 몰고 출근, ‘에니콜’ 휴대전화로 취재를 하고 ‘LG IBM’ 노트북으로 기사를 작성해 송고했다.

S기자의 일상이 말해주듯 우리의 생활은 상표와 함께 시작해 상표와 함께 끝난다. 그러나 상표는 ‘일상 생활’의 차원을 넘어선지 오래다.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상표의 가치가 더욱 더 중요해지기 때문이다. 한국은 외국 상표의 사용대가로 지불하는 로열티 규모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른다.

박성호(朴成浩)변호사는 “상품 등 유형(有形)의 재산 못지 않게 상표와 같은 무형(無形) 재산의 재산적 가치의 비중이 점점 커지고 있다”며 “이에 대한 법적 제도적 뒷받침이 완비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상표에 관한 한 법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다. 비교대상과 가치판단에 따라 거의 같은 사안에 대해서도 상반된 결론이 나올 수 있다.

최근 법원 판결에서 승패가 엇갈린 ‘뛰어넘기’와 ‘레벨업(Level Up)’ 사건이 좋은 사례. 서울고법 민사5부는 지난 달 7일 ‘재미있는 일본어 첫걸음 뛰어넘기’라는 일본어 학습교재 판매업자인 조모씨가 ‘이보영의 초급영어 뛰어넘기’라는 영어학습교재를 판매하는 (주)다락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승소 판결을 내렸다.

이 소송의 쟁점은 ‘OOO 뛰어넘기’가 서적의 내용을 나타내주는 단순한 ‘기술적 표장’인가 아니면 배타적인 상표권이 있느냐 하는 것. 재판부는 조씨가 먼저 등록한 상표는 “다른 상품과 식별하는 능력이 있고 출처표시로서의 기능도 있다”며 상표권 침해 사실을 인정했다.

반면 특허법원은 지난해 7월 비슷한 뜻의 영어단어인 ‘레벌업’ 사건에서 ‘레벌업’은 ‘수준을 끌어올린다’는 일반적인 뜻을 지니고 있는 낱말로서 식별력있는 상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했다. ‘레벨업’이란 상표가 먼저 등록돼 있다 하더라도 누구나 그에 구애받지 않고 ‘레벌업’이란 제목의 책을 판매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DRAGON’과 ‘용’, ‘WING’과 ‘날개’ 사건도 마찬가지. 대법원은 91년 ‘용표’와 ‘DRAGON’ 상표는 관념에 있어서 동일하다고 판결했는데 93년 ‘WING’ 사건에서는 ‘WING’과 ‘날개’ 상표가 관념에 있어서 동일하지 않다고 판결했다.그러나 고급 승용차 ’그랜져’의 이름을 본따 ’그랜져 리어카’를 만들었다면 이것도 상표권침해에 해당.

‘카스(cass)’ 맥주 사건도 재미난 사례. 서울지법 의정부지원은 최근 (주)카스맥주가 단란주점 등에서 ‘Gass’라는 상표의 비알콜성 음료를 판매한 (주)을포원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을포원에게 ‘Gass’의 생산 및 판매를 중지토록 판결했다.

을포원측은 단란주점 등에서 알콜성음료를 팔 수 없도록 하고 있는 점을 이용, 비알콜성 음료를 팔면서 기분상 ‘술맛’이 나게 ‘카스’ 맥주와 비슷한 ‘가스’ 음료를 팔아왔다. 카스맥주는 그러나 ‘cdss’라는 상표를 사용한 업체에 대해서는 아직 소송을 내지 않고 있다. 법조인들은 ‘cdss’는 또 다른 법적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이수형기자>soo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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