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구겐하임미술관 토머스 크렌스 관장

  • 입력 2000년 7월 13일 18시 46분


한해 관람객 700만명을 자랑하는 구겐하임 미술관은 ‘미술관이 돈을 버는’ 모범적 사례로 꼽힌다. 그 자체가 예술인 건물인데다 뛰어난 기획과 운영도 뛰어나기 때문이다. 컨템포러리 아트의 ‘빅3’ 중 현대미술관(MoMA)이나 휘트니미술관보다 한발 앞섰다는 평가를 받는다. ‘본관’에 해당하는 뉴욕 솔로몬구겐하임을 비롯해 세계에 5개의 구겐하임미술관이 있다.

전세계 구겐하임미술관의 사령탑인 토머스 크렌스(Thomas Krens) 관장은 이 미술관 재기의 일등공신. 1988년 부임 이래 작품 수집 보관에 치중하던 미술관에 과감히 ‘비즈니스’ 개념을 도입해 성공했다.

뉴욕 솔로몬관에서 최근 그를 만났다. 사무실은 20명은 족히 앉을 만한 테이블이 한 가운데를 점령해서 회의실 같은 인상을 줬다. 벽에는 큰 그림 하나 걸려있지 않았고 대신 전시장 도면과 서류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미술계 비즈니스맨’의 면모는 구겐하임 운영 철학을 묻는 첫 질문에 대한 답변에서도 확연히 드러났다.

“저에게 ‘철학’은 없고 ‘전략’이 있을 뿐입니다. 미술관의 국제화, 컬렉션과 프로그램 개발, 다양한 자금조성 등이죠. 특히 미술관의 세계적 네트워크를 중시합니다. 더 많은 수입과 더 많은 소장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죠.”

사실 구겐하임의 세계화는 크렌스 관장의 최대 업적으로 꼽힌다. 뉴욕 소호(92년), 베를린(97년), 스페인 빌바오(99년) 등 세 곳에 분관을 세웠다. 수장고에 있는 방대한 컬렉션을 놀리지 않고 ‘월드 투어’를 통해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미술관의 인터내셔널 마케팅이다.

이같은 마인드가 경영학(예일대 박사)을 공부한 배경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일단 그는 “오래 전 일이라 뭘 배웠는지도 기억도 안난다”며 농담삼아 말했다. “기업경영이 뭔지 전 잘 모릅니다. 하지만 미술관도 대중을 끌어들이고 수익을 낸다는 점에서 비즈니스 마인드가 중요합니다.”

그는 2002년 월드컵에 맞춰 한국 건축전을 갖고 싶다는 의지를 비치면서도 “기업이나 정부의 후원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고 전제를 붙이기도 했다.

크렌스 관장이 내건 미술관 운영론의 핵심이 ‘대중적 호소력’에 있다. 그는 미술관의 문턱을 과감하게 낮춰 일반인과 함께 배우고 즐기는 대중문화의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대표적인 것이 지난해 오토바이의 명품을 전시한 ‘모터사이클 예술전’으로 매주 2만여 관객을 구겐하임으로 끌어들였다. 올해초 백남준의 회고전은 이를 앞서는 대성황을 이루기도 했다. 오는 10월로 예정된 세계적 디자이너 조르주 아르마니의 전시회도 벌써부터 세간의 화제다.

겐하임의 성공비결은 전시건 건물이건 일반인에게 흥미거리를 제공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기금이 많아지고 세계 미술계에 영향력이 높아진 것은 마술이 아니라 논리적인 결과입니다. 미술계를 선도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모험을 독려하는 분위기가 아니기 때문이죠. 구겐하임은 꾸준히 모험을 시도해왔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내년에는 맨해턴 해안 공장지대에 또하나의 새 구겐하임 미술관이 착공된다. 구겐하임 ‘6호점’은 스페인 빌바오관을 설계했던 프랭크 게리(70)가 지난해 디자인을 끝낸 상태. ‘금속제 꽃’(Metalic Flower)은 현란한 외관으로 세계적 명물로 꼽힐 듯하다.

“9억 달러(한화 약1조원)가 드는 프로젝트입니다. 이미 민간기부금으로 5억 달러를 마련했고 기업에서도 2억달러를 후원받았습니다. 정부에서 1억달러를 지원해주기로 했고요.”

크렌스 관장은 인터뷰 도중 업무 때문에 수시로 자리를 뜨기도 했다. 30여분간의 인터뷰 뒤 사진을 찍자고 했더니 사진 한 장을 불쑥 내밀었다. 지난달 러시아 에르미타주 박물관 앞에서 영화배우 제레미 아이언스와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있는 장면. 미술관 앞에 최신형 BMW 오토바이가 서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54세의 미술관 관장이 오토바이를 타고 출근하는 모습이 쉽게 떠오르지 않았다.

<뉴욕〓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