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일수/人事청문회 기간 늘려야

  • 입력 2000년 7월 9일 18시 49분


16대 국회에 들어와 가장 눈에 띄는 변화 가운데 하나가 인사청문회다. 15대 국회가 종착역을 앞두고 손질했던 국회법에는 이밖에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제도개혁이 들어 있다.

▼후보 자질검증 기대 못미쳐▼

이를테면 연중 국회 개원 체제, 국민 부담이 될 입법사항에 대한 국회의원 전원위원회제, 법안실명제, 대통령령 등 행정입법에 대한 국회의 효율적 통제 제도 도입 등이 그것이다. 그 중에서도 헌정 사상 처음 도입된 인사청문회야말로 국민대표기관으로서의 국회 위상을 확정해 준 가장 인상깊은 변화라고 할 수 있다.

국회는 지금까지 헌법에 따라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감사원장 임명 및 대법관과 중앙선거관리위원 임명동의, 그리고 헌재 재판관 중 일부에 대한 선출 등의 과제를 수행해왔다. 이들 인사가 헌법기관으로서 중요한 직책을 수행해야 할 인물들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합리적인 검증절차 없이 그저 형식적으로 표결처리되기 일쑤였다.

인사청문회 도입과 시행으로 국회는 이 중요한 과제를 통과의례로 다루던 관행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인물들의 공직 적합성에 대한 자질 검증은 물론 행정부와 사법부에 대한 국회의 견제 작용까지 내실화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제는 인사청문회 내용이다. 내실있는 청문회가 되지 않는다면 단지 의미없는 장식품 하나를 국회에 더 걸어 놓는 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지난달 말 이한동 국무총리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차분한 자질검증절차라는 기대에 못미쳤다. 정치적인 당파성을 그대로 노정했고 운영조차 부실하고 무기력한 겉핥기 수준을 넘지 못했다. 6, 7일 이틀간 실시된 대법관 인사청문회도 여야 의원들의 준비 부족과 치열한 법리 논쟁 수행능력 부족으로 인해 맹탕청문회에 지나지않았다는 평가도 없지 않다.

부실청문회가 된 데는 우선 의원들의 준비부족을 꼽을 수 있다. 사상 초유의 일이라서 준비에 만전을 기한다 해도 오히려 부족했으리라. 특히 대법관 인사청문회는 여야를 떠나 인권보장의 최후 보루인 사법부의 독립과 국민의 사법부로 거듭나기 위한 개혁의 비전, 인권의식, 인생관과 세계관, 법과 정의에 관한 통찰력 등을 깊이 있게 검증할 수 있는 장이 돼야 했다.

대법관 인사의 새틀짜기에 연배를 뛰어넘는 파격, 지역안배 요소가 정보화 국제화 그리고 평화통일의 시대라는 우리 현실에서 공동체주의와 자유주의, 공리론과 의무론, 자연법과 법실증주의의 대립을 용해할 수 있는 다양한 스펙트럼을 대신할 수 있는지를 밝혔어야 했다. 인간의 존엄성, 죄형법정주의원칙과 같은 법의 일반원칙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갖고 있는지를 묻는 것도 중요하다.

법에 있어서 진보와 자유, 보편성과 개별성, 자유와 안정 등 갈등하는 가치관에 대해 어떤 체계적인 사고를 갖고 있는지도 밝혀내야 한다. 이런 원칙적인 문제에 대한 치열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얼버무리는 무소신 답변은 불성실한 것이 아니라 부적격임을 국민이 알 수 있게 해줘야 한다.

▼기간-대상 확대해야▼

이틀간으로 제한된 빠듯한 청문회 기간도 문제점으로 떠올랐다. 청문회 기간은 사람에 따라, 사안에 따라 신축성있게 운용할 수 있도록 법을 다시 손질해야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 대상자도 헌법재판관 전원에게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

6공 이래 우리나라의 법 발전에 획기적인 기여를 해온 것이 헌법재판소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내실있는 인사청문회를 통해 국민이 바라던 사법의 민주화가 새 지평을 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렇게 되려면 인사청문회에 각계의 다양한 견해가 수렴될 수 있는 장이 마련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이제 인사청문회 결과보고서를 토대로 의원 전원이 국민의 입장에 서서 반드시 자율투표로 임명동의 여부를 결정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자기의 확신에 반해서 결정하는 법관을 경멸하며, 우리는 더 나쁜, 더 잘못된 법률이나 부당하거나 부도덕한 법률로 인해서도 자기의 법에 대한 충성을 흩뜨리지 않는 법관을 존경한다”는 독일 법철학자 마이호퍼의 말에 합당한 그런 대법관을 원하기 때문이다.

김일수(고려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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