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Digital]세상을 바꾼 판결

  • 입력 2000년 6월 29일 19시 50분


대법관들의 판결문은 세상을 지키기도 하고 바꾸기도 한다. 최고(最高) 최종(最終)판결인 대법원 판결은 때로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때로는 시민의 일상생활에 혁명을 일으키기도 한다.

71년 국가배상법 판결은 대법원이 권력에 맞서 인권과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낸 판결로 꼽힌다.

당시 대법원은 박정희 정권 이후 처음으로 위헌심사권을 적극적으로 행사, 군인이 직무상 피해에 대해 국가에 배상청구를 할 수 없도록 한 국가배상법 2조가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그때까지 피해보상을 받지 못하던 400여명의 피해자에게 구제받을 길을 열어주고 사법부 독립의 발판을 마련했다.

82년 김시훈(金詩勳)씨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에 의해 강요된 진술서는 증거로 인정할 수 없다”고 함으로써 피의자의 인권보장에 새 전기를 마련했다. 피의자에게 진술 거부권을 미리 알려주지 않고 받은 진술은 증거능력이 없다는 ‘미란다 원칙’을 최초로 인정한 92년 ‘신20세기파 사건’도 있다.

대법원은 84년 ‘진해화학 사건’에서 기업활동과 공해피해의 인과관계를 입증할 책임이 가해자인 기업에게 있다고 판결함으로써 환경운동의 법적 기반을 제시해줬다.

88년에 있었던 ‘전화 교환원 사건 판결’은 전근대적인 남녀차별 고용관행에 철퇴를 가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대법원은 당시 전화교환원의 정년이 일반직종보다 낮게 규정된 것은 여성근로자들을 조기퇴직시키기 위해 부당하게 정해졌을 가능성이 있다며 한국통신의 손을 들어줬던 원심판결을 뒤엎었다.

94년 ‘생수판결’은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큰 변화를 가져온 판결.

대법원은 “광천음료수에 대한 새로운 기준이 마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생수를 제조, 판매하지 못하도록 한 정부의 조치는 부당하다”고 판결함으로써 생수시판이 가능하도록 했다.

국가보안법의 무분별한 적용에 제동을 건 90년의 ‘홍성담 사건’ 판결도 기념비적인 판결.

또 88년 검사출신의 이명희(李明熙)대법관은 검찰이 불기소한 ‘부천 성고문 사건’의 재정신청을 받아들여 문귀동(文貴童)경장을 법정에 세움으로써 민주화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정은기자>light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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