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노형/'마늘분쟁' WTO따라 해결하라

  • 입력 2000년 6월 28일 20시 29분


중국과 수교한 후 사실상 첫 통상 마찰의 ‘식탁’에 오른 마늘이 정부와 업계를 마늘 맛만큼이나 아리게 하고 있다. 마늘분쟁에 대한 정부의 대응은 소탐대실(小貪大失)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고, 중국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한 보다 현명한 자세가 필요하다고 지적되고 있다.

중국 마늘에 대한 추가 관세의 부과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 조치)로서 예외적으로 허용된다. 중국이 아직은 WTO 회원국이 아니지만 우리 정부가 중국 마늘에 대하여 WTO의 관련 절차를 준수한 것은 긴급수입제한조치가 WTO법상 예외적인 조치로 민감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중국과의 마늘 분쟁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물론 양국의 통상 및 정무 관계가 원만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해결되어야 한다. 이 점에서 적어도 다음의 두 가지 점이 고려되어야 한다.

첫째, 마늘 분쟁의 해결은 정당성에 기초하여야 하며 WTO법의 문자와 정신에서 벗어나서는 안된다. 예컨대 중국이 WTO 회원국이라면 중국은 마늘 수출의 피해에 상응하는 수준으로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보복 조치는 WTO에서 승인되어야 한다. 그런데 898만달러의 마늘 수입에 대하여 무려 50배가 넘는 5억여달러에 상응하는 보복은 WTO에서 전혀 허용될 수 없다.

둘째, 마늘 분쟁의 해결은 정치적인 고려에서 벗어나야 한다. 흥미롭게도 마늘에 대한 긴급수입제한조치가 4월 총선 직전에 민주당의 요구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 있고 또한 중국의 보복 조치에 대한 맞불 대응은 자칫 전반적인 한중 관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런 주장들은 통상 관계를 정치적으로 이해하려는 시각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이렇게 통상 관계를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고려하게 되면 지정학상 미국 일본 중국 등 주변 강대국과의 정치적 관계가 특히 중요한 한국으로서는 언제나 통상 관계를 정치적 관계에서 양보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러나 한국은 무역이 국내총생산에서 70%가 넘는 통상 국가이다. 결코 어느 한 순간에도 어느 한 품목에 대해서도 통상 이익이 소홀히 다루어질 수는 없다.

GATT와 WTO 체제가 세계 경제 발전에 크게 기여할 수 있었던 것은 통상 문제에서 정치적 고려를 배제하였기 때문이다. WTO가 유엔의 전문기구가 아닌 사실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중국이 WTO 예비회원국으로서 WTO법을 준수할 것을 단호하게 요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끝내 중국이 WTO법의 문자와 정신을 무시한다면 미국 등 WTO 회원국들에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시켜야 한다.

마늘분쟁에서 우리 정부의 올바른 대응은 한국의 이익은 물론 WTO 체제 이익의 수호와 직결될 것이다. 우리 정부가 의연하게 중국과 협상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침착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

박노형(고려대 법대교수·통상법연구센터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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