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일본대중문화가 몰려온다

  • 입력 2000년 6월 27일 19시 22분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3차 개방 조치가 이뤄졌다. 이번 조치는 지난 두 차례에 걸친 개방조치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전까지의 개방조치가 일부에 국한되는 형식적인 수준에 그쳤다면 이번 조치는 대중문화 전 부문으로 분야를 확대했으며 개방 범위도 크게 넓혀 놓고 있다. 완전 개방은 아니지만 이번에야 비로소 실질적인 의미의 ‘개방’이 이뤄진 셈이다.

국가 간 교류에서 다른 분야도 아닌 문화 분야의 ‘빗장’을 막아놓고 있는 것은 ‘문화의 세기’를 거론하는 마당에 결코 합리적인 자세가 아니다. 아직 국민감정이 무르익지 않았다는 반론도 있지만 새로운 한일관계를 위해서는 오히려 문화교류부터 차근차근 풀어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 점에서 대폭적으로 이뤄진 이번 3차 개방 조치에 반대할 이유는 없다.

일본 대중문화는 그동안 공식 수입이 금지되어 있었긴 해도 국내 문화소비자들이 이런저런 채널을 통해 접할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갑작스레 일본 문화 열풍이 분다든지 하는 일은 없을 듯하다. 정부가 이번에 큰 폭의 개방을 결심한 것도 이 점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일본 대중문화 개방은 문화교류 이외에 문화산업적 측면이라는 또 다른 변수가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국내 문화시장은 주로 미국과 일본의 영향을 받고 있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는 이미 젊은 세대들의 세계에서는 붐을 이루고 있다. 이번 조치로 우리는 더더욱 일본문화의 소비시장으로 전락할 위험성이 많다.

요즘 문화계에서 나타나고 있는 현상들은 이 같은 우려가 현실로 바뀔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18세 미만 관람불가’를 제외한 모든 일본 영화가 개방되는 영화계의 경우 국내 영화사들이 오래 전부터 일본 영화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 국내 영화사들이 과당 경쟁을 벌여 수입가격을 높이는 것도 문제지만 할리우드에 이어 일본 영화까지 본격 가세함으로써 그만큼 한국 영화 시장이 잠식되지 않을까 걱정된다. 이런 사정은 가요 애니메이션 등 다른 대중문화 장르도 마찬가지다.

특히 일본 대중문화는 저질과 퇴폐적인 요소들이 많다. 이런 것들을 어떻게 걸러내느냐에 대해서도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문화관광부는 이번 개방조치를 발표하면서 국내 문화산업을 더욱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문화산업의 뿌리를 이루는 문화기반이 활성화되지 않는 한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문화종사자들도 우리 문화의 경쟁력 향상에 더욱 적극적으로 힘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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