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구연의 야구읽기]찬호, 마음 비우고 던져라

  • 입력 2000년 6월 20일 19시 00분


지금은 은퇴한 ‘살아있는 전설’ 놀란 라이언의 투구를 보면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그가 기록했던 노히트노런의 위업이 아니라 공 1개에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억’ 소리가 관중석까지 들려온 것이었다. 40을 넘긴 노투수의 전력투구는 전율을 느끼게 했다.

19일 박찬호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정확하게 100개의 공을 던지면서 9승째를 낚았다.

한결 나아진 경기운영과 타격, 베이스 러닝, 슬라이딩은 그가 단지 ‘공만 잘 던지는 반쪽 선수’가 아니라 상당한 야구센스와 재능을 고루 갖추었음을 보여준 점에서도 기분좋은 일이다.

그러나 필자는 그 역시 공을 던질 때마다 ‘억’ 소리를 지르며 혼신의 힘을 다해 던지는 모습을 보면서 그의 진지하고 강한 승부욕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 또한 크다고 생각한다.

야구선수는 야구로 평가받아야 함을 잘 아는 그의 전력투구는 5회부터 손에 쥐가 나기 시작했고 급기야 7회를 끝내고 마운드에서 물러난 것만 보더라도 1승을 위한 긴장의 한 단면을 볼 수 있다.

세계 최고의 무대에서 선발투수의 1승엔 우연이 통하지 않는다는 ‘정글의 법칙’을 이미 마이너리그 때 체험해 봤으니….

이제 박찬호가 유념해야 할 것은 ‘올스타 출전’ ‘20승 투수’ ‘사이영상 후보’라는 달콤한 유혹에 빠지거나 부담을 갖지 않는 일이다. 훈장이 사욕없이 잘 싸웠을 때 주어지듯 투구 역시 잡념과 과욕이 없어야 균형이 무너지지 않기 때문이다.(야구해설가)

kseven@nuri.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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