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교통선진국]못믿을 '안전시설' 되레 사고유발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40분


2월 17일 오후4시45분경 강원 고성군 미시령 고개에서 동국대생 44명을 태우고 속초로 달리던 관광버스가 왼쪽으로 굽은 내리막길을 달리다 오른쪽 방호벽에 부딪치면서 뒤집혔다. 편도 1차로의 지방도로에서 일어난 이 사고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려던 대학생 7명이 숨지고 13명이 중상, 24명이 경상을 입었다.

고성경찰서는 ‘초대형 교통사고 심층분석 및 대책보고서’에 “노면은 건조한 상태였고 공사구간이 없는 등 정상적인 운행에 지장이 없는 도로. 5일 전 입사해 대형차량 운전경험이 부족한 운전사가 급커브길을 제대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채 운전하다 일어난 사고”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사고현장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운전사 과실 못지않게 도로 및 교통안전 시설이 너무 허술한데 놀랐다. 내리막길 커브가 너무 심하고 도로 기울기가 기준에 맞지 않았으며 미끄럼 방지시설도 전혀 없었다.

미시령 교통사고는 경찰의 사고조사와 통계자료에 운전사 과실로 기록될 뿐 안전시설의 미비점은 주목을 받지 못한 대표적 사례이다. 국내 도로 및 교통안전시설의 설치 운영이 체계적이지 못하고 비효율적이라는 점이 그동안 수없이 지적돼왔는데도 여전히 그대로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이 98년 말 실시한 ‘도로안전시설 설치 및 관리기준 연구’에 따르면 안전시설을 기준대로 설치하지 않아 교통사고를 막지 못했으며 오히려 사고를 유발한 문제점이 여러 곳에서 드러났다.

폐타이어를 이용한 충격 흡수시설이 차도에 걸쳐 있고<사진1> 유지보수를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하는 바람에 손상된 시설이 차도에 떨어져 사고위험을 높이며<사진2> 노면표시가 엉망이어서 운전사에게 혼란을 준다는 것.<사진3>

도로와 교통안전시설의 이런 문제점은 도로안전 관리업무가 여러 기관에 분산돼 체계적이지 못하고, 이에 따라 시설 관리자가 명확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외국 제품을 그대로 모방한 시설이 많이 설치되고 있는데 이 시설들의 성능을 평가하고 검증할 수 있는 전문인력과 시스템이 없는 것도 문제이다.

따라서 차량방호 안전시설의 실물충돌 성능, 주행 중 안전시설의 기능, 악조건에서의 시설 성능 등을 검증하고 기준을 개선할 수 있는 종합적인 도로시설 시험장을 설치하고 이를 평가하는 시스템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의 노관섭(魯官燮)수석연구원은 “도로교통 안전시설의 관리수준을 높이려면 현재의 조직체계와 업무지침을 보완하고 담당 인력의 전문성을 향상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송상근기자>songmoon@donga.com

▼전문가기고▼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정부 시민단체 언론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도로의 안전을 도모하려면 우선 도로구조를 개선하고 안전시설을 효율적으로 설치 운용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도로개선사업을 시행했는데도 오히려 사고가 더 늘어나고, 특히 안전시설을 무분별하게 설치해 기능이 저하되면서 예산을 낭비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나라는 교통시설 담당 기관이 이원화된 상태다. 시선유도시설 방호울타리 도로표지 등 도로안전시설은 건설교통부에서 담당하고, 교통안전표지 노면표시 신호기 등 교통안전시설은 경찰청에서 담당한다.

현재 운용 중인 안전시설을 보면 외형적으로는 잘 정비된 것처럼 보이지만 안전이 특히 강조되는 보행교통 지역(횡단보도 학교지역 주거지역), 교차로(평면교차로 입체교차로 철도건널목), 공사구역 등 특별지역은 적합한 기준이 마련돼 있지 않다.

안전시설은 초기 설치 못지 않게 사후 유지관리도 중요하다. 우리 나라처럼 공해가 심하고 공공시설에 대한 국민 의식이 낮아 시설의 기능 저하와 파손이 심한 경우 더욱 그렇다.

따라서 정기적으로 점검하고 보수해서 이미 설치된 시설물의 기능을 제대로 유지하는 것이 기존 시설을 방치한 채 같은 장소에 또다른 시설을 설치하는 것보다 효율적이다.

현재 국내에는 안전시설을 관리하고 연구하는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므로 정부 관계자들과 전문가 집단이 함께 안전시설을 검토 평가하고 개선하는 전문위원회 등의 조직을 갖출 필요가 있다. 새로운 시설이 개발되거나 안전시설에 관한 대안이 제시됐을 때, 그리고 이에 대한 검증실험을 통한 인증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때 이 위원회를 활용하면 효과적인 정책결정이 가능할 것이다.

노관섭(한국건설 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

▽자문위원단(가나다순)〓내남정(손해보험협회 이사) 설재훈(교통개발연구원 연구위원) 유광희(경찰청 교통심의관) 이순철(충북대 교수) 임평남(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교통사고종합분석센터 소장) 지광식(건설교통부 수송심의관)

▽손해보험협회 회원사(자동차보험 취급 보험사)〓동양화재 신동아화재 대한화재 국제화재 쌍용화재 제일화재 해동화재 삼성화재 현대해상 LG화재 동부화재

▽특별취재팀〓윤정국차장(이슈부 메트로팀·팀장) 이인철( 〃 교육팀) 송상근( 〃 환경복지팀) 서정보(문화부) 이종훈(국제부) 윤상호(이슈부 메트로팀) 신석호기자(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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