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리콘밸리 리포트]배종태/커지는 '디지털 격차'

  • 입력 2000년 6월 19일 19시 11분


실리콘밸리를 관통하는 101번 고속도로는 오후3시만 넘어서면 주차장이 된다. 60만달러에 내놓은 집에 사람이 몰려 100만달러에 팔렸다는 이야기도 이곳에선 뉴스가 못된다. 팰러앨토의 방 두 개 짜리 아파트 월세는 2000달러를 넘는다. 실리콘밸리가 신경제를 이끄는 ‘기회의 땅’으로 부각되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다양한 사회문제가 생기고 있다.

기업과 정부, 교육기관 등의 대표들이 참여한 ‘조인트벤처 실리콘밸리’는 이같은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비영리 조직. 이들은 경제 성장, 교육, 교통, 치안, 경제적 기회 등 각 부문에서 17개 세부 목표를 세우고 매년 목표달성 지표를 발표하고 있다. 중요한 사회적 이슈에 대해선 컨설팅회사 도움을 받아 특별보고서를 내기도 한다.

최근 미국에선 ‘디지털 격차(digital divide)’ 문제가 가장 심각한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디지털 격차는 디지털 경제의 혜택을 누리는 그룹과 그렇지 못한 그룹간의 격차를 말한다. 그룹별로 직업이나 교육, 경제, 기술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고 디지털 경제는 이 격차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다.

실리콘밸리 지역의 지난해 평균 임금은 5만3700달러로 미국 평균인 3만3700달러의 1.6배에 이른다. 그러나 수입이 적은 공무원이나 교사 등 공공부문 종사자들과 일용직 근로자들은 치솟는 거주 비용과 물가를 감당할 수가 없다. 저소득층 자녀들의 컴퓨터교육 기회도 상대적으로 적어 디지털 격차는 커뮤니티별로 더욱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최근에는 벤처기업들도 사회단체들을 통해 PC를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보내는 등 디지털 격차를 줄이려는 노력을 하고 있고 관련 웹사이트도 여러 개 생겨났다.

‘실리콘밸리 2000’ 보고서에 의하면 현재 실리콘밸리에는 250만명이 살고 있고 일자리는 130만개에 이른다. 인종별로는 백인이 49%, 히스패닉 23%, 아시아계 23%, 흑인이 4%이며 전체의 32%가 외국에서 태어났다. 연령별로는 20세에서 44세가 전체의 41%로 매우 젊다. 대학 졸업자가 전체의 37%로 학력도 높다. 범죄율도 다른 지역보다 매우 낮다.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선 2만1200개의 일자리가 창출됐고 새로 상장한 벤처기업수는 77개로 최고치를 경신했다. 반면 집값은 너무 비싸 중간층 소득자가 살 수 있는 주택은 불과 37%로 미국 전체 평균(68%)의 절반 정도다.

생활비가 많이 들고 사회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점차 나빠지면서 실리콘밸리를 떠나는 기업도 생기고 있다. 하지만 아직 대다수 기업들은 실리콘밸리를 떠날 생각이 전혀 없다. 실리콘밸리에 있으면서 얻는 혜택이 단점에 비해 월등히 크기 때문이다. HP엔터프라이즈컴퓨팅의 앤 리버무어 사장은 “실리콘밸리가 고속성장에 따른 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지만 고급인력과 창의성, 투자 여건이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가치는 계산할 수 없다”고 실리콘밸리 예찬론을 편다. 한 반도체장비업체의 사장은 “필요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공급하는 업체가 모두 차로 20분 거리에 있다”며 떠날 수 없는 이유를 설명했다. 최근 미국내 여러 곳에서 지식집약단지가 급성장하고 있지만 실리콘밸리와 이들 단지 사이의 ‘격차’는 여전히 크게만 보인다.

배종태(KAIST 테크노경영대학원교수·미국 스탠퍼드대 객원교수)

ztbae@gsb.stnaford.edu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