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바르 前서독 내독부장관 "통일 빨리 올것"

  • 입력 2000년 6월 9일 19시 13분


《에곤 바르 전 서독 내독부(통일부)장관은 동방정책의 설계자이자 집행자로 통한다. 그는 63년 ‘접촉을 통한 변화’를 화두로 동방정책의 기틀을 세운 첫 동서독 정상회담의 막후 주역. 서독 외무부 기획실장, 총리실 차관을 거쳐 72년 내독부장관에 올랐다. 78세인 그는 독일 사민당(SPD) 국제안보위원회위원을 맡고 있다. 8일 오후 독일 본에 있는 에버트 재단 정치인 클럽에서 그를 만나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조언 등을 들어봤다.》

“현재의 남북한 상황은 70년 동서독 정상회담이 시작될 당시보다 훨씬 유리하다. 문제는 남북한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 그리고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에 달려 있다.”

바르 전 내독부장관은 남북정상회담이 잘 진행되면 이는 한국의 분단극복을 위한 시작이며 분단을 종식시키기 위한 종착점이 될 것이라고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이번 정상회담의 의미를 어떻게 평가하는가.

“첫 정상회담 당시 동서독은 완전한 주권국가가 아니었다. 4강대국의 동의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한국은 다르다. 북한과 대화를 하겠다고 한다면 누가 반대할 수 있겠는가. 남북한의 분단으로 인한 긴장상황이 지속되기를 원하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 해도 한번에 모든 걸 다 해결할 수는 없지 않나.

“물론 분단극복이 하룻밤에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 정상회담이 잘 되면 긴장완화와 통일을 위한 과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물론 그 과정이 수년간 지속될 수도 있다.”

바르는 서두르지 말아야 할 이유로 분단국 국민의 인성 시스템 가치관 인생경험의 차이를 들었다. 그는 독일이 통일과정에서 저지른 가장 큰 과오의 하나로 동서독인들의 사고방식 차이가 얼마나 큰 지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점을 들었다.

“남북한은 동서독에 비해 10년 이상 더 긴 분단을 경험하고 있다. 50년 분단을 단 5년 만에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국인들에게 결코 독일처럼 통일을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싶다.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한다. 접촉을 통해 긴장완화와 협력을 이루고, 작은 단계에서 중간단계로 전진하다 보면 통일을 향한 새 시스템이 개발되고 새 방향이 정해지고 새 구도가 만들어질 것이다.”

―그러나 정상회담에 임하는 남북한의 입장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정상회담에서 무엇을 논의할 것인지는 한국인 스스로가 결정할 문제다. 그러나 현재 북한의 입장은 70년 동독의 처지에 비해 훨씬 절박하다. 북한은 이번 정상회담을 통해 생존을 보장받으려 할 수도 있다. 북한이 남한의 경제지원을 대가로 최소한의 인적교류를 허용할 가능성도 있다. 무엇보다 남북한은 상대방이 할 수 있는 것을 존중해야 한다.”

―주한미군 문제 등 난제가 제기될 가능성도 있는데….

“주한미군 문제는 거론하지 않는 것이 좋다. 통일이 되면 이 문제는 몇달 또는 몇년 내에 해결될 수 있다. 내가 만약 김대중대통령이나 김정일국방위원장이라면 주한미군 문제는 우리가 해결할 문제가 아니니 통일정부에 맡기고 사전에 거론하거나 어떤 결론도 내리지 말자고 제의할 것이다.”

―첫 동서독 정상회담 이후 통일까지는 30년 세월이 걸렸다. 남북한의 통일에는 어느 정도의 세월이 필요할 것인가.

“한국의 경우는 훨씬 상황이 좋다. 30년까지 기다릴 필요가 없을 것이다. 10년 만에 통일을 이룰 수도 있다. 그러나 2년 만에 통일을 달성하려고 해서는 안된다. 5년 만에 하지도 말아야 한다.”

―독일에서 동방정책이 통일을 오히려 늦췄다는 비난이 있었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햇볕정책에 대한 비판이 있다.

“동방정책에 대해 엄청난 비판과 토론이 있었다. 그러나 동독정권의 안정을 도왔다는 핵심은 부인할 수 없다. ‘작은 발걸음 하나가 거창한 연설보다 훨씬 낫다’는 브란트의 말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바르는 사민당 소속인 자신이 82년 정권을 잡은 기민당(CDU)의 헬무트 콜 총리에게 스스로 찾아가 동방정책 추진을 위해 유지해왔던 소련과의 극비채널을 넘겨준 일화를 소개하기도 했다. 2시간여 동안 열정적으로 인터뷰에 응하던 그는 “통일정책은 반드시 지속성이 있어야 한다”는 충고로 말을 맺었다.

방형남<국제부장>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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