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며 생각하며]최영애/性폭력 여성유발론 유감

  • 입력 2000년 6월 7일 19시 02분


요즈음 나는 잇달아 불거져 나오는 일련의 ‘지도층 성추행’ 사건들로 조금은 우울하다. 성폭력 전문 상담기관에서 거의 10년을 일해 온 나로서는 지도층 성추행이 전혀 새로울 것도, 놀랄 일도 아니어서 새삼스러운 분노나 충격 또는 허탈감에 휘말릴 이유는 없다.

다만 이들 일련의 사건, 특히 장원 전 녹색연합 사무총장 성추행 사건을 둘러싸고 벌어지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의 논란이 10년 전과 별반 달라진 것이 없다는 사실 때문이다. 여전히 많은 사람들은 가해자의 잘못보다는 피해 여성의 품행을 의심하고 성추행을 자초한 것으로 몰고 가는 여성 유발론과 사회개혁과 성 문제는 별개의 것이며 성은 본능이라는 장원 옹호론의 입장을 취한다.

우리나라 속담에 ‘흔들리는 바늘에 실을 꿸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말하자면 여성이 동의하지 않는 한 성관계가 이뤄질 수 없다는 논리다. 조선조 사회의 정절 이데올로기를 토대로 한 이런 인식의 뿌리는 참으로 깊고 질기다. 1991년 상담소를 시작하면서부터 직면해야 했던 여성 책임론, 여성 유발론은 새 천년이 시작된 21세기에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성인 남녀, 특히 서로 알고 있는 사이에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의 경우 여성책임론은 영락없는 단골 메뉴다.

강산도 변한다는 10년 세월 동안 성폭력 문제에 매달려 온 나로서는 ‘여성단체라고 여성만 옹호하느냐. 여자도 문제 있다는 것을 밝혀라’는 힐난조의 항의전화, ‘여자들의 각성이 먼저 요구된다’는 점잖은 충고 등 장원사건과 관련한 일련의 전화에 그저 기가 막히고 한심할 뿐이다.

이런 여성 유발론은 성폭력이 기본적으로 권력적 관계에서 강자가 약자에게 성적으로 가하는 폭력이라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폭력 가해자는 남성이며 피해자의 95%가 여성과 여자아이들이다. 가해자와 피해자의 관계는 주로 어른과 아이, 직장상사와 부하 여직원, 교사와 학생, 선배와 후배 관계이다. 이와 반대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성폭력은 거의 드물다.

이런 권력적, 위계적 관계는 피해자들의 저항을 어렵게 하고 계획적 함정에 고스란히 빠져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든다. 그리고 가해자들이 갖고 있는 권력에 의해 이들 사건은 곧잘 왜곡되거나 은폐돼 왔다.

그러나 성폭력 피해자들에게 가해지는 의혹과 질시를 무릅쓰고 용감하게 자신의 피해를 드러내는 여성들이 점차 증가하고 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사건의 우조교 같은 용기 있는 여성이 있었기에 직장 내 성희롱을 처벌하는 법들을 제정할 수 있게 됐고 이번 ‘지도층 성추행’ 사건도 피해 여성들의 신고가 없었다면 모두 묻혀버리고 피해자들이 수없이 양산됐을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상담소의 경우 고소율은 20%를 넘고 있다. 대학 내 성희롱 학칙 제정을 위해 뛰는 여대생들의 수도 늘고 있고 직장 내 성희롱으로 고발하는 건수 역시 늘고 있다. 최근에는 직장 내 성추행으로 입은 상처를 산재로 인정하는 판결도 나왔다.

여성들의 의식변화와 더불어 성폭력 특별법 제정 및 직장 내 성희롱을 처벌할 수 있는 법들이 제정되고 성폭력 상담기관의 수가 50여개나 될 정도로 법적 제도적 측면에서도 상당한 변화가 이뤄진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회는 인간의 평등, 남녀 평등사회와는 거리가 먼 남성 중심적 의식과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답보상태에 빠져 있다. 성이 본능이라는 전제 위에서 남성의 성만을 옹호하고 합리화하는 논리는 더 이상 정당화될 수 없다. 성이 인간의 본성이라면 인간은 자신의 성을 표현할 권리와 침해받지 않을 권리가 있다. 성폭력은 한 인격을 모독하는 것이며 인권을 유린하는 행위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이번에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적절한 처벌은 물론이고 이번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남성 중심적 성문화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돼야 한다. 이제는 정말 달라져야 한다.

최영애(성폭력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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