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회창 총재의 책임

  • 입력 2000년 5월 31일 19시 48분


31일 열린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이회창(李會昌) 총재가 예상대로 압승을 거두어 계속 당을 이끌게 됐다. 총 투표수 7110표 가운데 66.3%라는 압도적인 지지로 경선 후보들을 따돌리고 사실상 ‘재 추대’된 셈이다. 총재 경선을 둘러싼 표 얻기 경쟁으로 빚어진 주류 비주류간의 갈등과 반목을 씻고 단합된 모습으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야당으로 전열을 가다듬기 바란다.

우리 야당사를 보면 전당대회는 격전으로 치르더라도 그 결과에는 흔쾌히 승복하고 단합하는 것이 나름의 전통이었다. 그 동안 당권 경쟁에 나선 비주류 후보들은 이총재를 겨냥, ‘총재의 정치력 부재로 반(反)한나라당 연대가 생겼다’(金德龍후보), ‘지난 총선은 영남표에만 의존한 사실상의 패배’(姜三載후보), ‘오직 반(反)DJ정서에만 기댄 정치력’(孫鶴圭후보)이라고 공세를 폈다. 그러나 이제 이총재는 그러한 고언(苦言)을 ‘쓴 약’으로 받아들이고, 비주류측은 이총재의 승리를 축하하고 당의 진로를 위해 협력하는 자세로 돌아가야 한다.

‘이회창 야당’은 야당 사상 보기 드문 강력한 ‘단일 리더십’에 의한 원내 ‘다수 야당’이라는 것이 특징이다. 그만큼 위력도 크지만 거기 상응하는 책임도 무겁고 국민의 기대 또한 높다. 국정에서 여당 못지 않은 ‘공동책임의 동반자’이기 때문에 국정이 소란하기만 하고 알맹이 없이 표류하면 그 책임의 반분(半分)을 면할 길이 없다. 과거의 정권획득과는 거리가 먼 불임(不姙)야당, ‘만년(萬年)’소수야당과는 다르다. 따라서 처신도 달라져야 한다.

당장 한나라당이 강성(强性)일변도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가 없지 않다. 이총재가 전당대회 준비 때문에 약화된 정국주도권을 다잡기 위해 강하게 다툴 것이라는 관측이다. 물론 야당이 야당다우려면 정부여당의 잘못을 날카롭게 짚어내 비판하고 싸울 땐 싸워야 한다. 그러나 과거 ‘방탄(防彈)국회’를 반복한 것과 같은 당리당략적 대여(對與)투쟁방식으로는 안된다.

여권이 설사 무리수를 들고나올 경우라도, 그럴수록 다수당답게 의연하고 정도(正道)에 충실함으로써 오히려 민심을 얻는 야당이기를 국민은 기대한다. 투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라 차원 높은 투쟁으로, 수권정당다운 면모를 보이면서 싸우라는 것이다.

한나라당이 건전한 비판과 함께 분명한 정책 대안을 내는 야당, 대화와 타협을 앞세우면서 투쟁의 강온을 조절할 줄 아는 야당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