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성철/黨論이 民心보다 소중한가

  • 입력 2000년 5월 19일 19시 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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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 자유투표제(크로스 보팅)에 관한 논란이 활발하다. 이 논란은 한마디로 의원들이 자기 의사 또는 지역구민의 의사에 불문하고 무조건 따라야 하는 이른바 ‘당론’이라는 것을 인정할 것이냐 말 것이냐 하는 것이다.

민주주의 선진국들은 이 문제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한다. 예를 들어 서유럽의 선진국들은 대부분 당론을 인정한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사실상 당론이 인정되지 않는다. 소신에 입각해 여당 의원이 대통령이 원하는 법안에 반대를 해도 누구도 나무라지 않을 뿐만 아니라 눈살을 찌푸리지도 않는다. 당연히 해야 할 의원의 책무를 다하고 있다고 생각할 뿐이다.

사실 당론이라는 것은 언뜻 보면 조리가 맞지 않는 이야기이다. 국회의원이 자기를 뽑아 준 선거구민의 의사는 무시하고 당의 보스가 정하는 정책을 무조건 따라야 한다니 그것은 민주주의의 기본원칙, 즉 의원은 최대한 국민의 의사를 따르고 반영해야 한다는 원칙에 어긋나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각제에서 당론이라는 것이 인정되고 모두가 기꺼이 그것을 따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내각제에서는 국민들이 하시라도 그들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큰 길이 열려 있기 때문이다. 바로 내각 불신임과 그 뒤를 잇는 총선이라는 것이 그것이다. 만약 집권당의 정책이 광범위하게 국민의 불만과 불신을 사면 의원들이 내각을 불신임해 통치자를 언제라도 바꿀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의원들이 국민의 뜻을 건건이 무시하고 당론이라는 것을 따르더라도 국민에게는 큰 무기, 비장의 무기가 있기 때문에 별 불만이 없는 것이다. 서유럽의 나라들이 대부분 당론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이유는 바로 그들이 대부분 내각제를 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통령제에서는 다르다. 대통령은 한번 선출하면 아무리 국민이 원해도 임기 동안에는 그를 바꿀 수 없다. 국회의원도 바꿀 수 없다.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국민의 뜻을 무시하면 국민은 다음 선거까지 그들의 뜻을 표현할 길이 없다. 4∼5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국민은 그들의 뜻이 무시되는 데 대해 가슴을 쳐야 한다. 그 긴 세월 동안 국민의 뜻이 무시되고 보스의 뜻이 국민의 뜻에 우선될 때 그것은 민주주의 기본원칙, 즉 ‘국민의 뜻에 의한 정치’라는 기본 원칙에 크게 위배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대통령 중심제에서는 당론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의 미국에서 여야를 막론하고 당의 지도부가 아무리 의원들에게 어떤 방향으로 투표를 원해도 어느 의원이든 ‘우리 지역구민이 그 법안을 원하지 않는다’고만 하면 얼마든지 그에 반대되게 투표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철저한 대통령 중심제이다. 여든 야든 당이 의원들을 당론이라는 것으로 묶어 놓으면 묶어 놓는 기간만큼 국민의 뜻은 무시된다. 우리 국민의 정치에 대한 불만은 대부분 이렇게 자신들의 뜻이 무시되는 데서 오는 것이다.

대통령 중심제에서 당론이라는 족쇄는 또한 국회의원들을 무한히 무능하게 보이게 만드는 부작용도 있다. 당에서 정하는 대로 거수만 하는 것이 국회의원이니 그가 하는 일이 없어 보이고 국민으로부터 인정과 신임을 받을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대통령제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통령은 국민을 상대로 설득하고 그에 설득된 국민이 자신의 지역 국회의원에게 압력을 넣어 대통령의 정책을 지지하도록 하는 그런 기본 구도를 가진 제도이다. 여기에 엉뚱하게 내각제에서 통용되는 당론이라는 것을 만들어 국회의원을 꽁꽁 묶어 둔 것은 개발독재하에서 독재자의 뜻을 무조건 밀어붙이고자 했던 시대의 기발한 발상이었다. 우리는 새 천년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개발 독재 시대의 잘못된 제도에 얽매여 나라를 국민의 뜻이 아니라 보스의 뜻에 따라 다스리고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 나라는 근원적인 면에서 민주화가 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의원자유투표제는 대통령제에서 선택이 아니라 의무이다.

전성철(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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