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정운/5·18은 대혁명의 신화

  • 입력 2000년 5월 17일 19시 34분


5·18은 아직도 여러 다른 이름들로 불리고 있으며 이는 우리 사회가 아직 이 사건의 정체나 성격에 대해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지난 20년 동안 5·18에 대해 음모론뿐만 아니라 많은 상충된 이념적 해석들이 제시됐다.

▼인간존엄성 회복위한 투쟁▼

5·18을 공식적으로 기념하는 것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뜻과 정치적 의미, 그리고는 중요한 사건이라는 직관적 합의에 근거할 뿐이다. 5·18은 여러가지로 특이한 사건이다.

우선 5·18은 상상을 초월하는 사건이었다. 공수부대의 폭력이나 시민들의 저항이나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5·18은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던 사건이다.

또한 5·18은 이전의 유사한 사건들과는 달리 시민들의 동기도 어떤 정치 사회적 이념으로 이해하기는 곤란하다. 5·18은 우리 역사의 전형을 벗어난 사건이었다.

1980년 5월 광주시민들의 죽음을 넘어선 투쟁은 엄청난 비인간적 폭력에 대한 분노와 그런 폭력이 지배하는 암흑의 도시에서 최소한의 인간 존엄성을 되찾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의 동기를 적대감이나 과잉진압에 대한 반작용 등으로 짐승들의 싸움처럼 치부해서는 안된다. 그날 시민들이 죽음을 넘어 싸운 것은 인간이 되기 위해서였고 그들은 절대 공동체를 이루어 위대한 인간임을 확인했다.

5·18의 위대성은 시민들이 어떤 정치 이념의 지시에 따른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인간이 되기 위해 죽음을 넘어 싸웠다는 원초적 초월성에 있는 것이다.

이 원초적 초월성으로부터 지난 20년간 수많은 정치 사회 이념들은 5·18에서 생명력을 얻어왔고 앞으로도 우리는 여기에서 새로운 사상과 이념의 영감을 얻을 것이다. 5·18은 바로 우리의 마르지 않는 지혜의 호수인 것이다. 나아가 지난 20년 동안 우리사회의 많은 저항운동들은 5·18을 반복하려 해왔고 이는 실로 엄청난 위협이었다.

한편에서 5·18은 계속 반복돼야 하는 역사의 동력인 동시에 절대로 반복돼서는 안되는 우리 모두의 악몽인 셈이다. 5·18은 현재에도 언제 반복될지 모르는 초현실적 기억이며 따라서 지금 우리에게 신화로 존재한다. 나아가 이 신화는 우리 민주주의의 최후의 방어선을 이루고 있으며 또한 모든 이념들의 원천이기에 5·18은 지금 우리에게 살아있는 대혁명의 신화인 것이다.

5·18은 역사적 전형을 벗어난 사건임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사의 구조에서 필연적인 사건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구조를 어떤 집단이 민중을 억압해왔고 그 핍박에서 결국 민중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으로 보는 것은 단기적 시각일 것이다. 오히려 그 구조는 지난 100여년 간의 우리 근현대사의 뿌리에서 찾아야 한다. 민족적 위기에서 지식인, 지배계층은 무력했고 우리민족은 민중의 힘, 그들의 몸에 기대어 저항민족주의로 삶을 이어왔다.

민중주의는 우리의 위대한 역사였다. 그러나 그 안에는 지식인들의 좌절과 상호불신을 반영하고 조장하는 반지성주의가 잉태돼 성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방 이후에도 민중주의 반지성주의는 멈추지 않고, 냉전 전쟁 그리고 자주국방 경제발전 등을 통해 몸 노동력 폭력에 대한 믿음은 더욱 깊이 뿌리내려온 반면 지성에 대한 불신과 파괴는 계속됐다. 5·18은 폭력을 숭배한 우리 역사의 민중주의 반지성주의의 절정이었다.

그곳에서 국군 민중은 악마로, 그리고 시민 민중은 죽음을 넘어선 신으로 나타났다.

▼이젠 反지성주의 극복 필요▼

5·18을 역사로 차분히 바라보면 민중주의 반지성주의로는 우리에게 더 나아갈 길이 없음이 뚜렷이 보인다. 대혁명은 우리에게 역사적 대전환을 요구한다.

우리의 민주주의가 불안한 것은 제도와 권력이 모자람이 아니요, 우리 한국인이 역사 속에서 야만화됐기 때문이다. 아직도 우리사회에는 반지성주의가 창궐하고 있다. 지성을 자판기 취급하는 BK21이니, '신지식인'이니 하는 얘기를 들어보면 이 땅에 반지성주의는 이제 위험수위를 넘은 것으로 보인다. 5·18은 단 한번으로 족한 대혁명이었다.

5·18을 신화로 계속 간직하기 위해서는 이제는 우리도 그들처럼 인간이 되기 위해 진정한 지성을 위한 몸부림이 있어야 한다.

최정운<서울대교수·외교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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