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계 21세기 비전]불교 '인드라망 생명공동체'

  • 입력 2000년 5월 11일 19시 29분


불교 화엄경에는 불법(佛法)을 지키는 신 중의 하나인 제석천(帝釋天)의 궁전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제석천 궁전에는 투명한 구슬 그물이 드리워져 있다. 그물코마다의 투명 구슬에는 우주삼라만상이 휘황찬란하게 투영된다. 이 구슬은 저 구슬에 투영되고, 저 구슬은 이 구슬에 투영된다. 정신의 구슬은 물질의 구슬에 투영되고, 물질의 구슬은 정신의 구슬에 투영된다. 인간의 구슬은 자연의 구슬에 투영되고, 자연의 구슬은 인간의 구슬에 투영된다…”.

우주의 모든 것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상징하는 이 구슬 그물은 ‘인드라망’이라고 불린다.

전북 남원시 실상사 인근에는 3만여평의 넓은 농지가 펼쳐져 있다. 이 곳에는 전국 각지에서 모인 사람들이 농사 짓는 법을 배우고 있다. 현재 20여명이 유기농법을 배우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배우는 것은 단순한 농사 기술이 아니다. 이들은 ‘자연과 인간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몸에 익히고 있다. 유기농법을 고집하는 이유도 인간이 자연을 착취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길을 모색하기 때문이다.

실상사가 이같은 사업을 추진한 것은 1998년 ‘귀농전문학교’를 세운 뒤부터. 영농에 뜻을 둔 사람들을 모아 현장 체험을 통해 구체적인 영농 준비를 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근본취지는 “자연과 인간이 화합해 살아가자”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하는 데 있다. 그동안 80여명이 ‘귀농전문학교’를 마쳤으며, 이 중 60여명이 실제 농사를 짓고 있다.

실상사의 ‘귀농전문학교’는 ‘우주만물이 한 몸이며 더불어 살아야한다’는 불가의 가르침을 전파하기 위해 구성된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상임대표 도법 실상사주지)가 추진하고 있는 사업 중 하나이다.

‘인드라망 생명공동체’는 여러 불교 단체들이 산발적으로 벌여 오던 사업들을 한데 묶어 일관되게 추진하기 위해 지난해 출범했다. 조계사를 포함해 25개 사찰 및 불교 단체가 연계해 사업을 펼치고 있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는 ‘생활협동사업’ 도 펼치고 있다. 서울 조계사 봉은사 도선사 등 사찰을 통해 귀농전문학교를 마친 사람들이 생산한 농산물을 판매한다. 이 과정에서 농산물이 생산된 과정을 설명하며 거기에 깃든 사상도 설명한다. 교육사업도 펼쳐 ‘더불어 사는 삶’을 가르치는 청소년 대안교육기관을 2001년 설립할 예정이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의 이정호 사무처장. “현대의 위기는 대립적인 세계관으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인간은 자연과 화합하지 않고 정복의 대상으로만 여겨 현재의 환경위기를 초래했습니다. 또 인간과 인간끼리도 대립한 결과 경쟁위주의 사회를 낳았고, 많은 갈등을 낳고 있습니다. 국가와 국가, 민족과 민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래서는 인간은 물론, 모든 생명체들이 더 이상 그 존재를 지속할 수 없을지도 모릅니다. 이같이 총체적인 ‘생명의 위기’를 극복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인드라망 생명 공동체’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인간이 대립하지 말고 상생과 화합의 길을 모색하는 곳에 새로운 시대의 비전이 있다고 제시한다.

<이원홍기자>bluesky@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