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교사가 '우범자'인가?

  • 입력 2000년 5월 3일 19시 36분


과외금지가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 이후 교육부가 잇따라 후속대책을 내놓고 있으나 졸속의 흔적이 역력하다. 전반적으로 현실성이 결여되어 있고 논리적으로 앞뒤가 맞지 않는 것도 있다. 일부 대책은 교사 등 교육관계자들의 강한 반발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과외 전면 허용’이라는 거센 파도 앞에서 주무부서인 교육부가 국민을 안심시키기는커녕 허둥대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불안감만 증폭되고 있다.

교육부가 내놓는 대책이란 것들은 새로운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을 반복하는 것이다. 대표적인 것이 과외를 한 현직 교사와 교수들을 중징계하고 명단을 공개하겠다는 내용이다. 과외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를 때마다 등장하던 ‘단골메뉴’다. 이 배경에는 교사들이 기회만 주어지면 언제든 직분을 망각하고 과외를 할 수 있다는 교육부의 ‘편견’이 깔려 있다.

게다가 지명도가 높아 과외를 할 가능성이 있는 교사들에 대해서는 중점 관리하겠다는 교육부 방침은 사생활 침해 논란까지 불러일으킨다. 교육부로서는 사전 경고의 효과를 노린 것일지 몰라도 교사들을 범죄 가능성이 높은 ‘우범자’정도로 취급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교육부와 교사들은 과외 척결을 위해 서로 협조해 나가야 할 동반자 관계다. 교육부가 이처럼 비뚤어진 시각을 갖고 있다면 어떻게 교사들과 함께 공교육 정상화를 도모해 나갈 수 있을지 걱정이다.

교육부는 당장 다음주부터 고액과외를 단속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여기에서도 교육당국의 조급함과 답답한 현실인식이 나타난다. 헌재 결정이 내려진 것은 바로 지난주의 일이다. 그 사이 고액과외가 늘었으면 얼마나 늘었을까. 당사자들이 서로 입만 다물면 그만인 고액과외를 과연 효과적으로 단속할 수나 있는 것일까. 지금은 고액과외의 기준조차 정해지지 않은 상태다.

과외 단속은 원칙적으로 헌재의 결정과 어긋난다. 헌재 결정문에 따르면 과외금지를 명시한 법률이 새로 개정될 때까지 경과조치로 모든 과외가 허용된다고 밝히고 있다. 법 개정 이전에는 어떤 과외도 불법이 아니라는 의미다. 교육부는 우선 실효성 있는 대체 법률을 만드는데 지혜를 모아야 한다.

교육부는 지난주 대통령에 대한 업무보고 자리에서 대통령으로부터 ‘과외대책이 없다’는 질책을 받은 후 서두른 나머지 실효성보다는 ‘엄포성’ 대책을 남발하는 것 같다. 이런 전근대적인 행정 자세로는 근본적인 과외대책을 마련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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