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T이슈분석]현대 발목잡는 會社債보유한도

  • 입력 2000년 5월 2일 09시 35분


현대문제가 불거지면서 회사채보유한도 폐지여부가 시장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채권발행이 잘 안돼 장기자금조달이 어려워진 현대그룹 쪽에서는 회사채보유한도를 풀어주기를 원하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잔뜩 뜸만 들이며 '검토중'이라는 원론적인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정부는 지난9 8년부터 모든 금융기관으로 하여금 4대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나 기업어음(CP)를 그룹별로 일정 한도 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금융기관의 그룹별 회사채 보유한도는 15%이고 그룹별 기업어음 보유한도는 5%(개별기업 1%).

예를 들어 A라는 은행은 현대 삼성 LG SK 등 4대그룹이 발행한 회사채를 회사채 보유잔액중 그룹별로 각각 15%이상, 기업어음 보유잔액중 5%이상 보유하지 못하도록 돼있다.

이같은 회사채 보유한도 규제는 5대그룹의 회사채 및 CP발행 독식을 통한 자금집중을 막기 위한 취지로 도입됐다. 대우그룹이 와해돼 지금은 4대그룹에만 적용되고 있다.

그러나 이같은 규정이 최근에는 현대그룹에 대한 시장불신이 싹트면서 현대그룹이 회사채나 CP의 발행(차환 또는 신규)에 더욱 어려움을 겪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시장관계자들이 전했다.

한 은행의 관계자는 "최근 신용등급 A급인 현대의 모 계열사가 발행을 추진중인 1년만기 회사채를 정상적인 수준(시가평가 테이블)보다 1.60%포인트 더 높은 금리로 사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대그룹 계열사 채권을 사주고 싶어도 한도에 걸려 사 줄 수 없고 최근에는 현대문제가 불거져 리스크관리 차원에서 피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현대그룹 중에서 유동성이 가장 좋다는 현대중공업의 경우도 최근 2천억원 규모의 3년만기 회사채발행을 추진하고 있으나 은행 투신 등 금융기관들이 한도가 없다는 이유로 인수를 거절해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도제한이 없는 연기금 중 일부가 이 채권 인수를 검토했으나 신용등급을 다시 받아오라고 하는 등 신중한 입장을 보여 현대중공업측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CP시장도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한 시장관계자는 "지난주초 신용등급 A급인 현대계열사 91일물 CP가 정상적인 수준보다 0.60%포인트 정도 높은 금리로 거래됐고 현대문제가 불거진 후에는 이 수준에서도 매수희망자가 거의 없다"며 "이런 상황이라면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나 CP를 차환발행하는 데도 어려움을 겪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측은 회사채 및 CP보유한도를 완화해 줄 것을 바라고 있지만 금융당국의 반응은 아직까지 신통치가 않다.

현대금융계열사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 계열사가 발행할 채권의 매수처를 찾아달라는 요청이 쇄도하고 있지만 자금사정이 좋은 은행을 비롯한 금융기관들은 한도가 차있다는 이유 등을 들어 매수를 피하고 있다"며 차환발행 등에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비췄다.

이에대해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회사채 및 CP보유한도는 재벌그룹의 자금독식을 막기 위해 한시적으로 도입한 것이기 때문에 언젠가는 풀어야 한다는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며 "다만 언제 푸는게 바람직한지 그 시기를 검토중"이라고 말했다.

시장에서는 정부와 현대가 대주주의 私財출연 등 현대투신문제 해결을 둘러싸고 벌이는 갈등이 자칫 현대문제를 더 악화시켜 다시 한번 시장에 충격을 주지 않을 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 시장관계자는 "현대는 사재출연 등을 포함해 자구노력에 최선을 다하고 정부는 풀어도 될 규제를 풀어줌으로써 기업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것이 현대와 정부가 모두 이기는 Win-Win 전략임은 물론 한국경제가 살 수 있는 길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민병복 <동아닷컴 기자> bbmin@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