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윤득헌/교황의 메시지

  • 입력 2000년 4월 25일 20시 33분


로마교황 바오로 2세는 23일 바티칸 성 바오로 광장의 부활절 미사에서 인종주의와 극단적 외국인 혐오의식을 버리자고 호소했다. 그리고 인류는 소수의 이기주의자 때문에 다수가 고통을 받지 않도록 더욱 정의롭고 서로 협력하는 세계 건설을 위해 함께 나가자고 촉구했다. 내달 80세를 맞는 교황은 파리의 뤼스티제 대주교의 말대로 ‘육신의 포로’가 되어 있을 만큼 쇠약한 모습이었으나 비상한 지적 능력과 정신력으로 인류의 평화를 기원했다.

▷인종문제는 교황의 우려만큼이나 복잡하고 난해하다. 22일 브라질 원주민의 격렬한 시위만 해도 그렇다. 원주민 시위대는 포르투갈 탐험가 카브랄의 브라질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 상륙지인 세구로에서 열리려던 행사를 무산시켰다. 500년 전의 일을 ‘침략’으로 규정한 원주민은 “500년 동안 강제노역과 집단학살 등으로 희생됐다”며 원주민 재산권 등 권리회복을 주장했다. 500만명이었던 원주민이 현재는 33만여명에 불과하다는 것만 보더라도 500년간 얽히고 설킨 인종문제가 쉽게 풀리긴 어렵다.

▷비슷한 예는 호주에도 있다. 원주민들은 9월16일 시드니 올림픽 개회식날 호주정부의 인종차별정책을 질타하는 시위를 준비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정부가 1910년부터 60년간 ‘동화정책’이라는 이름아래 원주민 자녀 10만여명을 강제로 백인가정에 입양시키거나 보육원에 보냄으로써 성한 원주민 가정은 한곳도 없다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정부가 역사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거부하기 때문에 올림픽을 ‘인종차별의 성토장’으로 만들겠다는 게 원주민의 계획이다. 영국인이 호주에 정착하기 시작한 게 1788년이니 이 역시 복잡하다.

▷인종의 문제가 어디 그뿐이겠는가. 피부색이 다른, 생김생김이 다른, 생각이 다른 인종간 갈등은 지금 이 시각에도 세계 곳곳에서 계속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인종적 편견이나 차별이 없을까. 멀끔한 피부색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와 비록 불법체류자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기피하는 일을 하고 있는 외국인노동자를 대하는 태도가 같다고 자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교황의 메시지를 곰곰 되새겨 볼 일이다.

<윤득헌논설위원>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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