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기고/지역감정 이대론…]한인섭-윤평중교수

  • 입력 2000년 4월 21일 14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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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남인이여 부끄러워하자.’ ‘깨어나라 호남인들이여.’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영호남 지역을 나누어 싹쓸이한 이번 총선 결과가 나오자 극에 달한 지역주의 투표행태를 자성하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영남 출신인 서울대법대 한인섭 교수는 영남권의 몰표 현상을 신랄하게 비판하는 글을 보내왔다. 또 호남 출신인 한신대 철학과 윤평중 교수는 민주당과 친여 후보 일색으로 당선시킨 호남인들을 질타하는 글을 기고했다. 영호남 출신의 두 지식인이 고향사람들로부터 돌맞을 각오를 하고 쓴 글들이 지역감정 극복을 위한 대화의 장을 여는 단초가 되기를 기대한다. 》

▼한인섭/영남출신의 영남출판▼

선거는 끝났다. 개표 결과에 대한 첫 느낌은 충청 이북의 섬세한 선택과 영호남의 몰표 현상이다. 특히 영남권의 싹쓸이는 무분별의 극치다.

“우리가 남이가”“덮어놓고 뭉치자”던 왕년의 구호는 이제“반 DJ면 무조건 오케이”의 경지에 도달했다. 추풍령 이남에서 영도다리에 이르기까지 오직 단일 색깔로 뒤덮였다.

그 결과에 대한 영남인들의 소감은 어떨까. 환호와 감격의 함성이 낙동강 따라 메아리치고 있는가. 뜻 밖에도 환호의 소리는 적다.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 아닐까. 서쪽 동네(호남)도 대충 비슷하니 동쪽 동네(영남)라고 더 비난받을 이유는 없지 않을까 하는 자신 없는 변명을 한 자락 깔고 말이다. 그러나 서쪽 동네는 그래도 시민단체의 낙천기준이 어느 정도 존중되었고, 그 기준을 무시하고 공천된 인사들은 살얼음판 승리를 했거나 심지어 패배까지 했기에, 이쪽 동네에 비해 진일보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선거가 진행 중일 땐 지역감정에 대한 어떤 논의도 조심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지역감정의 옹호도 비판도 또 다른 지역감정의 반작용을 불러온 전례 때문이다. 이젠 선거가 끝났으니 한마디하자. 영남의 몰표 현상은 분명히 명분 없는, 반작용 감정의 산물이었다. 그 반작용의 결과 영남권은 무슨 이익을 기대할 수 있을까.

우선 영남지역은 지역감정에 기대면 아무나 국회의원이 될 수 있는 지역임을 자인한 셈이다. 유권자의 신성한 선택을 함부로 폄하하지 말라고? 노무현의 패배를 보자. 이 압도적인 지역편향에 맞서 그래도 산을 옮기겠다는 ‘우공(愚公)’ 같은 인물이 아직도 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이다. 서울 종로에서 압승했던 그 후보가 부산에 가면 지역감정의 회오리에 끝내 낙마한다. 부산 북-강서을의 주민이 서울 종로구민과 젊은이들에게 할 말은 무엇일까. 앞으로 부산과 영남에서 누가 이 노무현의 어리석음을 닮으려 하겠는가.

정책과 인물, 나라사랑이 아니라 오직 보스에 대한 충성이 국회의원이 되는 지름길임을 영남인들은 가르쳐 주었다. 특정당의 공천장이 당선의 보증수표가 된다면 국민주권은 어디에 있는가. 의정활동의 모범으로 평가된 김재천 같은 인사는 낙천 낙선하고, 보스의 앞날을 위해 몸바쳤던 인사는 ‘공천〓당선’되었다. 앞으로 누가 의정활동을 열심히 하려 들겠는가. 그럴 여유가 있으면 보스의 출세를 위해 맹종하라는 부정적 교훈만 남지 않았는가.

가장 한심한 것은 무슨 명목으로든 DJ 공격만 잘 하면 최대승리를 거둘 수 있는 곳이 영남임을 실증했다는 점이다. DJ 공격과 흠집잡기에만 앞장서온 저격수들이 중부전선에서는 낙선했고, DJ를 알레르기적으로 옹호했던 DJ 나팔수도 호남에서 떨어졌다. 그러나 무차별 폭로와 비난에다, 경력면에서 ‘공안 고문검사’라는 비난의 초점이 된 정형근씨는 무사함에 더하여 압승했다. 총선연대의 집중낙선 대상자 중에서도 가장 큰 박수(?)를 유발했던 그 후보가 압승한 원인은 무엇인가. 탁월한 의정활동, 나라사랑 때문에 찍었다고 지역구민들은 자신 있게 주장할 수 있을까.

표 현상이 DJ의 영남 푸대접에 대한 경고의 메시지라고?반DJ 현상이 권력 상실증에 따른 금단(禁斷) 현상 때문인지, DJ 자신의 탓인지는 엄정한 검토를 요한다. 인사편중면에서 잘못이 드러남은 사실이다. 그러나 미안하지만, 다른 지역은 몰라도 영남은 이 점에 대해 별 할 말이 없다. 지난 37년간을 이어온 영남대통령 중에서, DJ가 영남에 기울이는 정성의 절반이라도 호남에 쏟았더라면 지역감정의 골이 이처럼 패었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JP의 볼모로 잡혀 있던 충청인들이 섬세한 안목으로 투표한 것과 비교해보면, 영남의 낙후된 지역정서의 실체가 더욱 부끄러워진다. 충청인의 분별력이 바람직한 미래상이라면 영남의 그 붕당주의적 패거리의식은 청산해야 할 과거다. 그야말로 영도다리에 빠져야 할 것은, 이 무분별한 지역감정과 붕당적 패거리의식이다.

필자는 영남에서 20년을 자랐고, 서울에 산 지 20년이 지났다. 직장 이름에도 ‘서울’이 들어 있지만, 3·15항쟁과 부마민주항쟁의 성지였던 그 고향에 대한 애착감 때문에 본적도 그대로 두고 산다. 때문에 서울이 출생지인 아들의 본적지 역시 경상남도 진주다. 본적지에 갈 기회가 별로 없는 아들의 법적 고향마저 영남으로 해놓았지만, 이 선거결과를 보면서 아들에게 멋진 고향이라고 강변할 건더기가 별로 없다.

‘네 탓’이라 주장할 일이 아니라 ‘내 탓’이라는 반성과 함께 지역감정 극복의 실마리를 열어야 한다. 이제부터라도 잘못된 통쾌감에 젖지 말고 부끄러움의 고백을 모아가자. 영남인들이여 부끄러워하라.

[약력=59년 경남 진주출생/부산 동성고 졸업/서울대 법학과 졸업/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서울대 법대교수]

▼윤평중/호남출신의 호남비판▼

각 정당들의 탄성과 한숨, 그리고 아쉬움이 엇갈리는 가운데 선거는 끝났다. 시민운동은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 하지만 민주주의의 꽃이자 축제여야 할 이번 선거판은 한국사회가 지역감정이라는 추악한 암덩어리의 포로임을 다시 한번 증명했다.

영남권 싹쓸이를 본 호남인들은 착잡한 가운데서도, “우리는 민주당 후보를 넷이나 떨어뜨리고 쓸만한 무소속후보를 뽑았지 않느냐”고 할지 모른다. DJ가 추천한 후보라면 막대기를 내세워도 당선시켰던 과거와는 다르다는 것이다. 총선연대 운동에 대한 지역주민의 호응도 상당했고, 그래서 전보다 나아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내용을 한번 들여다보자. 호남에서 뽑힌 무소속 후보들이 DJ와 민주당을 함께 비판한 적이 있는가? 오히려 이들은 입만 열면 DJ에 대한 충성심을 강조하고 당선되면 민주당에 입당할 것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인물보고 무소속후보를 지지했다는 호남인들은 스스로 자문해 볼 일이다. 이들 가운데 누가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다면 ‘뛰어난’ 그 인물에게 흔쾌히 표를 던졌을 것인가?

영남 싹쓸이 현상은 정녕 수치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나 그 내용도 한번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민주당 후보로 나온 부산의 노무현씨나 경북의 김중권씨 등은 상당한 표를 얻었거나, 간발의 차로 분패했다. 올곧은 정치노선을 지켜온 노무현은 지역감정이라는 미친 바람과 정면 대결하는 길을 선택해 장렬히 산화함으로써 깊은 인상을 남겼다. 부산에서의 노무현의 거듭된 좌절은 지역감정을 넘어서지 않고서는 어떠한 정치발전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웅변으로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가 음미해야 할 것은 부산 북-강서을 주민의 35.7%가, 영남인이 그렇게 싫어한다는 DJ의 민주당 후보인 노무현에게 표를 던졌다는 사실이다.

나아가 5·16 쿠데타 이후 최초로 제도권 진입을 노렸던 민주노동당 후보들은 울산과 창원에서 40%에 가까운 득표율로 선전했다. 보수 일색인 한국정치 지형에서 이념과 정책대결이 본격화할 수 있는 싹을 영남에서 투표로 틔워준 것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한나라당 후보들의 호남 득표율 보다 민주당 후보들의 영남 득표율이높다. 공장과 기업체가 상대적으로 많은 영남으로 이주한 호남인들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호남에서 제1야당인 한나라당 후보들의 득표율이 믿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는 사실에 대해 호남사람들은 부끄러워해야 마땅하다. 민주화의 본고장으로 자처한호남에서 진보정당의 싹을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도 수치스러운 일이다.

충청권에서 지역감정 극복의 청신호가 켜졌다는 해석에 대한 이견(異見)도 가능하다. ‘지는 해’로서 형용된 JP에 대한 향수와 ‘뜨는 해’로서 묘사된 이인제씨에 대한 기대가 혼란스럽게 교차하면서 생긴 균열이 자민련의 쇠락을 가져왔다고 볼 수도 있다.

지역감정이 활활 타오르든, 내연하고 있든지 간에 그 차이는 오십보 백보일 뿐이다. 돌이켜보면 DJP 연합에 의한 정권교체를 정당화한 것은 저항적 지역주의의 논리였다. 30년 이상 지속된 영남의 패권적 지역주의에 대항하는 지역연대가 요구된다는 것이다.

권교체를 이룸으로써 이 논리는 맞아떨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이번 선거는 지역주의를 가지고 지역주의와 대결하는 것은 정도(正道)가 아니라는 교훈을 뚜렷이 보여준다. 저항적 지역주의가 패권적 지역주의보다 도덕적 정서적으로 반드시 우월한 것만도 아니다. 호남의 한(恨), 그리고 억압과 배제의 아픈 기억들이 호남정권의 인사편중과 정책왜곡을 정당화해 줄 수는 없다. “영남이 30년 독식했는데 비해 호남은 3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그것 가지고 뭘 그리 야단이냐”는 생각은 유치하고 위험천만하기 짝이 없는 반민족적 행태다. 호남인이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남는 것은 힘세고 덩치큰 놈이 활개치는 골목싸움 뿐일 것이기 때문이다.

철이 들면서부터 필자는 전남 광주 출신이라는 사실을 항상 자랑스럽게 여겼다.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오기 전까지의 아름다운 추억이 서려있는 광주에서 일어난 80년 5월의 참극은 따라서 커다란 실존적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호남인이 고향에 대해 갖는 자긍심은 결코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욕심으로부터 나올 수는 없다.

그런 자부심은 오히려 패권주의를 거부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한국사회를 불구화시키는 최악의 패권주의적 책략이 지역감정 위에 기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득권 세력들이 애써 조장하는 지역감정의 실체를 평범한 보통사람들이 꿰뚫어보고 넘어설 때 비로소 진짜 지역사랑과 나라사랑이 시작될 수 있는 것이다.

[약력=56년 광주 출생/광주일고 졸업/고려대 철학과 졸업/미국 남일리노이대 철학박사/한신대 철학과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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