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문화 수출

  • 입력 2000년 4월 13일 19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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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러브레터’는 일본 대중문화의 위력을 실감하게 한다. 여주인공 나카야마 미호가 등반사고로 숨진 옛 애인을 그리워하며 눈 덮인 산을 향해 외치는 ‘오겐키데스카’(잘 있느냐)라는 대사가 국내에서 유행어가 됐을 정도니까. 국내 영화팬들이 이 영화의 깔끔하게 정제된 사랑이야기에 매료된 것을 보면 한일 두 나라가 정서적으로 공유하는 부분이 적지 않다는 사실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일본에서는 한국 영화 ‘쉬리’가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개봉 두 달여 만에 1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았으며 지금도 100여개 극장에서 상영 중이다. 우리와 같은 스크린쿼터는 없지만 할리우드영화의 수입을 극도로 억제할 정도로 외국영화에 배타적인 일본 풍토에서 ‘쉬리’는 대단한 성공을 거둔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 영화가 일본에서 통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긴 점을 높이 살 만하다.

▷우리가 일본 대중문화 개방에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던 것은 일차적으로 한일간의 특수 관계를 고려한 것이었지만 한편으로 일본 문화의 파괴력을 경계했던 점도 부인하기 어렵다. 알려진 것처럼 일본의 게임과 애니메이션은 세계 정상이다. 영화도 구로사와 감독 같은 거장을 배출할 만큼 우리보다 한 단계 위에 있다. 그러나 생각을 달리해 보자. 그동안 우리는 일본 대중문화의 ‘한반도 공습’을 두려워만 했지, 일본에 문화를 수출하겠다는 생각은 별로 한 적이 없다. ‘쉬리’처럼 우리 문화를 일본에 적극 수출해 보면 어떨까.

▷우리 문화의 일본 수출은 유리한 점이 많다. 지리적 이점은 물론이고 정서적 문화적으로 서로 통하는 점이 적지 않다. 더 중요한 것은 1억 명이 넘는 일본의 인구와 그에 따른 소비력이다. 일본은 여전히 부자나라이고 더구나 문화비 지출은 우리와 비교가 되지 않는다. 혹자는 우리가 어떤 문화를 일본에 수출할 수 있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영화말고도 가요, 국악, 게임용소프트웨어 등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일본에서의 시장성이다. 그러나 이 점도 우리의 문화산업이 세계를 겨냥한다면 어차피 우리의 힘으로 뛰어넘어야 한다. 가까운 일본조차 공략하지 못한다면 어떻게 문화산업으로 세계를 제패할 수 있겠는가.

홍찬식<논설위원>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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