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정해왕/경제개혁은 계속돼야 한다

  • 입력 2000년 4월 10일 19시 43분


요즘 부쩍 경제를 주제로 한 논의들이 무성하다. 나라 빚의 규모, 국부유출론에서부터 제2 위기론까지 줄줄이 쏟아져 나오는 우리 경제의 ‘취약함(?)’에 국민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불안해하는 표정이다.

2년여 전 외환위기라는 신고(辛苦)를 겪은 우리에게 근거 없는 낙관론은 물론 금물이다. 쓰라리게 경험한 대로 경제위기는 예고 없이 한순간에 닥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경제 관련 논의들은 문제의 핵심을 비켜간 것으로 보인다.

지금 중요한 것은 소모적인 ‘네 탓’ 공방에서 누구의 손을 들어주느냐 하는 것이 아니다. 정작 문제가 되는 것은 선거 후의 우리 경제다.

이와 관련해 최근 외국기관이나 해외 전문가들이 잇따라 보내오는 ‘경계경보’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얼마 전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서울포럼에 다녀간 피터 설리번 아시아개발은행(ADB) 부총재와 스티븐 로치 모건스탠리 수석연구위원은 약속이나 한 듯 “한국에 금융위기 재발 가능성이 있다”고 심각하게 경고했다. 3월31일 발표된 미국무역대표부(USTR) 연례보고서도 우리의 현실을 비교적 정확하게 꼬집고 있다.

“한국경제가 지난해 금융위기를 벗어나면서 자만심이 일어나 개혁 당위성을 잠식하고 있다.”

이렇듯 한국경제를 바라보는 해외시각의 키워드는 역시 ‘구조개혁’이다. 무엇보다도 개혁지속 여부를 중심에 놓고 한국경제를 평가하겠다는 메시지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떤가.

경제위기 극복과정에서 세계가 감탄했던 우리 경제주체들의 희생정신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 자리를 집단이기주의, 파벌주의가 채우고 있다.

반복되는 집단행동에 엄정하게 대처해야 할 정부는 선거를 의식한 탓인지 주요 현안에서 정책결정을 미루고 있는 인상이다. 이러한 정치 사회적 불안 때문인지 본격 선거전에 들어간 이후 주식시장은 큰 폭으로 출렁이고 있다.

향후 우리 경제에서 가장 우려되는 것은 정부의 구조조정 의지가 약화되는 상황이다. 선거결과에 따라 올 수 있는 장악력 상실에서 비롯된 것이든, 여권이 정치논리에 따라 이른바 ‘개혁피로 증후군’에 굴복하는 것이든 힘들여 쌓아올린 그간의 성과를 한순간에 허무는 결과를 낳는다.

거기에다 우리 경제 여건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선거 후 우려되는 물가상승 압력과 금리인상 가능성, 구조조정 반대와 임금인상을 주장하는 노동계 움직임, 빈부격차 확대로 인한 사회불안 등은 한 고비를 넘었던 우리 경제가 또 다시 넘어야 할 과제들이다.

해외요인도 무시할 수 없다. 제프리 삭스 미국 하버드대 교수 등이 주장하듯 미국 증시가 어느 순간 폭락한다면 미국 주가에 연동경향을 보이는 우리 증시도 큰 타격을 입고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주변 국가들의 위기에서 비롯되는 ‘전염 효과’ 역시 일시적인 경제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

또한 지난 2년여 동안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으로 외국인 투자 비중이 높아졌지만 정치권의 개혁추진 동향에 따라서는 해외자본이 빠져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러한 해외요인에서 자유롭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경제구조를 튼튼하게 다질 수밖에 없다. 구조개혁의 지속이 강조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처럼 곳곳에 숨어있는 우리 경제의 어두운 그림자를 걷어내려면 우리 모두 다시 2년 전의 마음가짐으로 돌아가야 한다. 경제위기는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다. 정부도 개혁을 지향하는 국민의 연대의식을 되살리고, 흔들리지 않는 개혁의지와 분명한 개혁 일정을 끊임없이 보여줘야 한다. 정치불안이 경제의 발목을 잡는 상황이 재연되어서는 곤란하다.

<정윤희기자>y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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