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인터뷰]'쉬리' 일본 배급자 이봉우

  • 입력 2000년 4월 6일 10시 39분


'쉬리'가 일본에서 성공하는 데 있어, 결코 빼놓아서는 안될 이름이 하나 있다. 바로 이봉우(40)란 우리 이름이다. 이봉우씨는 '쉬리'를 배급한 일본영화사 "시네콰논"의 대표다. 이름으로 알 수 있듯이 재일교포다.

일본내 수입에서부터 배급까지, 이봉우사장의 "면도날같은" 시장상황 분석과 시의적절하게 구사된 마케팅이 없었다면 이번 '쉬리'의 백만관객 동원은 어려운 일이었다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한국영화의 첫 일본 전역 동시 배급도 이씨의 중요한 업적에 속한다. 이봉우씨는 '쉬리' 배급에 앞서 2만여명의 일반관객을 상대로 수차례 시사회를 여는 등 신중에 신중을 기했다.

그는 일본내에서도 까다롭기로 유명한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난 1월22일 '쉬리' 첫회 상영때 "백만 관객은 무난하다"고 장담했다. 그의 예상은 적중했다. 이씨는 1960년 교토産. 조총련계열의 조선대학교 불어학과를 나와 프랑스로 유학까지 갔지만 중도에 포기했다. 그러나 이 유럽권 어학을 공부한 것이 이후 그의 영화 활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네콰논"은 지난 89년에 설립했으며 '쉬리'의 백만관객 돌파로 최대 호황을 맞게 됐다.

- 내일(7일) 저녁때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성대한 파티를 연다고 들었다. 일단 소감 한마디.

"파티는 사실 조금은 과시용인 측면도 있다. 시네콰논의 배급력이 이제 이만큼 성장했다는 것, 도호나 도에이, 쇼치쿠같은 메이저는 아니지만 영향력이 꽤 높아졌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다. 일본에서는,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이런 자기PR성 이미지 메이킹이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런 파티를 통해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다 널리 알리자는 데 목적이 있다.

- 수익이 만만치 않다고 들었다. 지금까지 "시네콰논"의 성적과 비교하면?

"우리가 영화를 제작하거나 배급한 이래 백만 관객을 넘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이런 성적을 내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백만 관객을 기준으로 했을 때, 극장 수입만 약 15억엔(150억원)이 된다. 비디오 판권료는 약 5억엔? TV판권료를 한 5,000만엔으로 보고 있고, DVD 등 기타 수입도 들어 온다. 족히 20억엔은 넘을 것으로 본다. 글쎄....강제규필름과의 수익 배분 문제는 그쪽과 공개 여부를 논의하지 않은 상태라 뭐라 말하기 어렵다. 합리적인 선에서 수익을 나누기로 했다(기자가 강제규필름측에 확인한 바에 따르면 양사는 모든 수익을 5:5로 나누기로 계약했다).

- 강제규필름의 차기작인 '단적비연수'도 배급하나.

"물론 매우 큰 관심이 있다. 이번 성공으로 강제규필름측과는 파트너십을 더욱 강하게 가져갈 생각이니까. 작품에 대한 기대감도 큰 편이다. 그러나 이 작품은 기존의 한국영화와도 스타일이나 여러 면에서 틀릴 것 같고, 일본쪽에서도 마찬가지다. 한마디로 별로 경험해본 영화가 아닐 것 같아서 지금으로서는 쉽게 파악하거나 짐작하기가 어렵다. 일단 영화가 나온 후에 배급 규모를 결정할 생각이다.

- 최근 한국영화가 강세다. '쉬리'처럼 일본 전국배급이 가능한 작품은 또 없는가

"솔직히 없다. '여고괴담2'를 '쉬리'와 거의 동시에 배급했는데 잘 안됐다. '쉬리'가 잘된 이유는 현실적인 테마가 잘 먹혀들어 갔기 때문이라고 본다. 일본 관객들도 잘 알거나 공감이 가는 내용이라는 얘기다. 남북 분단문제라든가, 여기에 적당이 섞여 있는 로맨스 등등. 한마디로 친근감이 있으면서도 새로운 얘기거리를 던져 줬다. 하지만 다른 작품들은 그런 구미를 당겨 오지 못한다. 특히 지금의 일본인들의 현실과는 동떨어진 얘기들이라서 흥행면에서 메리트가 없다."

- 한국영화를 빼놓지 않고 본다던데, 최근 가장 재미있게 본 작품은?

"글쎄...함부로 말하기는 어렵지만, '해피 엔드'가 가장 좋았던 것 같다. '반칙왕'? 재미는 있었는데, 솔직히 일본에서는 마케팅이 어려운 영화다. 일본만 해도 프로레슬링이 아직까지 큰 인기를 차지하고 있지만 그 정도의 얘기만으로는 프로레슬링 팬들을 극장으로 동원해 내기 어렵다. '춘향뎐'은 어느 정도 먹힐 수 있다고 본다. 일본에는 영화팬들이 연령적으로 아주 다양한 편이고 따라서 '춘향뎐'류의 영화를 좋아하는 특정층이 분명히 존재한다. '서편제'때문에 임권택감독은 일본내에서 어느 정도 인지도도 높은 편이고. 하지만 이 영화 역시 최대한도로 봐야 10만 정도의 관객만을 모을 것이다.

- 한국영화의 문제점이 뭐라고 보는가

"지나치게 배우 의존도가 높다. 너무 빨리 만들고. 상대적으로 기획력이 따라 붙을 시간이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자꾸 배우 위주로, 스타시스템으로 영화를 만들 수밖에. 그나마 마케팅을 잘하니까, 많은 결점이 상쇄된다고 본다. 배우나 스타감독에 의해 흥행이나 배급이 전적으로 좌우되서는 안된다고 본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영화에 대한 직접투자를 계획하고 있다고 들었다.

"그렇다. 결점이 있는 만큼 가능성 또한 매우 높다고 보기 때문이다. 꼭 강제규필름은 아니고, 한국의 영화사들과 얘기를 진행중이다. 최소한 제작비의 반은 직접투자할 생각이다. 시나리오도 공동으로 쓰고, 스텝들도 같이 일하게 해야 한다. 한국에는 자본을 투자하지만 결국 일본에는 작품이 역수입될 것이다. 그럴려면 일본 관객들의 구미에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작품 제작 자체가 공유될 필요가 있다. 한국영화에 대한 우리의 직접투자는 궁극적으로 일본내 한국영화 시장을 확대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 '쉬리'가 성공은 했지만, 두달반만의 백만관객은 호흡이 좀 늦다는 생각이 든다.

"일본 배급상황을 잘 몰라서 하는 소리다. '쉬리'도 개봉초기부터 백개 넘는 극장을 잡았으면 단기간 승부가 가능했을 수 있다. 그러나 그건 쇼치쿠같은 메이저 배급사들에게나 가능한 일이다. '쉬리'는 당초 37개관에서 시작해 다음에는 70개관으로, 그 다음에는 120개관으로 늘어났다. 장기 흥행이 가능했다는 것, 확대개봉이 가능했다는 것만 해도 '쉬리'의 인기가 높았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일본에서 백만관객을 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 당신은 재일교포 2세다. 한국 국적을 유지하고 있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귀화에 대한 생각도 없지 않았을 것 같다.

"그랬다. 특히 젊었을 때는. 귀화를 하지 않은 상태로 재일교포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특히 정신적으로. 다행스러운 것은 사업상에는 큰 장애요소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화를 직업으로 선택한 이상, 재일교포라는 점이 때로는 장점으로 작용하는 때도 많다.93년 '서편제'를 배급한 이후부터 그런 덕을 좀 본다고 생각해 왔다. 이번 '쉬리'도 마찬가지다.

오동진(FILM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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