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득헌의 스포츠 세상]사회도 '식스맨'이 필요하다

  • 입력 2000년 4월 3일 19시 22분


프로농구 99∼2000 시즌 챔피언전 이슈 중 하나는 식스맨(sixth man)이었다. 미국 프로농구(NBA)에 식스맨상이 생긴 것은 82∼83 시즌부터이지만 식스맨이란 말이 국내에서 일반화된 것은 역시 97년 프로농구가 출범하면서부터이다. 한국농구연맹(KBL)은 우수 후보선수상이란 이름으로 식스맨상을 시상하지만 꼭 어울리는 말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아무튼 프로농구 챔피언전에서도 드러났지만 식스맨의 역할은 다양하고 중요하다. 주전선수가 다치거나 부진할 때 기용되는 주전급 교체선수도 식스맨이다. 경기 흐름의 반전을 꾀할 때 기용되는 3점슛, 리바운드, 수비 등 전문 기량을 갖고 있는 선수도 식스맨이다. 상대팀 주전의 체력 소진을 위해 기용되는 선수도 식스맨이다. 식스맨은 팀의 승률을 높이고 색깔을 분명히 하는 데 든든한 배경이 되는 것이다.

NBA 얘기지만 식스맨으로 주전 이상의 각광을 받은 선수로는 현재 필라델피아 주전으로 변신한 토니 쿠코치가 있다. 95∼96 시즌 시카고 불스 소속으로 NBA 식스맨상을 수상한 그의 성적은 평균 득점 13.1, 평균 리바운드 4개, 평균 어시스트 3.5개였다. 그는 96년 12월18일 LA 레이커스와의 96∼97 시즌 경기에서는 4쿼터에서만 무려 20득점, 85-104까지 뒤지던 경기를 뒤집는 데 결정적 기여를 하기도 했다.

야구의 핀치히터는 경기에 나설 기회가 보다 제한적이지만 승부의 변수가 된다는 점에서는 식스맨과 역할이 같다 할 것이다. 실제 핀치히터의 활약으로 승부가 뒤집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18년 연륜의 국내 프로야구에서 핀치히터가 승부에 결정적 역할을 한 예로는 함학수(咸學洙)를 우선 꼽을 수 있다. 83년 4월 당시 MBC 청룡과의 대구 경기에서 홈팀인 삼성은 5회까지 0-7로 뒤졌다. 그쯤이면 관중이나 경기하는 팀이나 다소 맥이 빠지게 된다. 그러나 5회말 핀치히터로 나선 함학수는 회심의 만루홈런을 쳐내 단숨에 점수차를 3점으로 좁혀 놓았다. 국내 프로야구 최초의 핀치히터 만루홈런이었다. 다급해진 팀과 뒤쫓기에 신이 난 팀. 경기 결과는 삼성의 10-7 역전승이었다. 경기 흐름은 그렇게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프로농구 시즌이 끝났고, 프로야구 시즌이 시작된다. 식스맨이나 핀치히터가 승부의 세계에서 주전선수나 선발타자보다 큰 몫을 하기는 힘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이 있음으로써 팀의 행보나 살림이 힘차고 다양해질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네 생활도, 사회도 뭔가 믿을 만한 구석을 마련해 둔다면 좀더 활기차게 되지 않을까. 이제는 핀치히터가 식스맨 얘기를 대신할 차례이다.

<논설위원·이학박사> dhy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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