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호택/약점을 파는 마케팅

  • 입력 2000년 3월 29일 19시 46분


옴부즈맨은 본시 스웨덴에서 정부기관이나 공무원에 대한 시민의 불만을 조사하는 입법부의 민원 조사관이었다. 19세기에 서구 국가에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다가 나중에는 기업이나 신문사에서도 소비자의 의견을 수렴해 제품 생산에 반영하는 제도를 만들어 옴부즈맨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동아일보는 권위 있는 전문가들로 구성된 옴부즈맨의 지면 평가를 매주 월요일 오피니언 면에 게재한다. 서울에서 발행되는 종합일간지 중에서는 동아일보를 비롯해 2개 신문이 옴부즈맨 칼럼을 싣고 있다.

신문은 세상 소식을 전하고 논평하는 것을 업으로 삼다보니 업종의 특성상 스스로를 비판받을 기회가 적다. 그래서 맷집이 약한 편이다. 동아일보로서도 외부 전문가의 지면비판을 수용해 지면에 게재하기까지에는 꽤 용기가 필요했다. 칭찬은 소쿠리 비행기라도 기분이 좋고 비판은 ‘사랑의 매’라도 아픈 것이다. 이것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약한 속성임에랴.

때로 취재현장을 뛰는 일선기자들이 “옴부즈맨의 견해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담당부서에 이의를 제기하기도 한다. 옴부즈맨이 지적한 우리의 실수와 약점을 지면에 공개하는 것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내부에서만 회람하면서 지면제작에 충실하게 반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느냐는 의견이다.

한국 신문에서 옴부즈맨 칼럼이 이렇게 조심스럽게 싹을 틔우는 단계라면 구미 고급지들은 옴부즈맨 칼럼을 과감하게 1면에 싣기도 한다. 신문의 정직성과 자기성찰 노력을 보여주기 위한 노력이다.

‘우리 제품은 값이 비쌉니다.’ 이런 식으로 소비자들에게 제품의 약점을 노출시키는 광고 카피가 있다. 값이 비싼 것이 흠이지만 ‘품질이 뛰어나다’는 이미지를 강조해 손님을 끄는 전략이다. 어찌 보면 약점을 파는 마케팅이라고 할 수 있다.

마케팅 메시지에는 어떤 상품의 긍정적인 특성만을 부각시킨 일면적 메시지와 장단점을 함께 제시하는 양면적 메시지가 있다. 어떤 메시지가 효과적일까. 일면적 메시지는 교육수준이 낮고 자사 제품에 대해 호의적 견해를 가진 소비자들에게 좋은 방법이다. 반면에 양면적 메시지는 교육수준이 높고 자사 제품에 비판적인 소비자들에게 효과가 크다. 교육수준이 높은 계층은 양쪽 측면의 정보를 함께 알려주는 메시지를 편견이 적고 객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신문에서 양면적 메시지의 기능을 하는 것이 옴부즈맨 칼럼이다. 언론학자들은 옴부즈맨 칼럼이 전달하는 양면적 메시지의 순기능을 높이 평가한다. 독자들의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보여줌으로써 신문의 신뢰성을 높이고 권위주의의 타성을 털어낼 수 있다는 것이다.

신문비평을 논하다가 갑자기 마케팅 이론을 들이대 다소 비약 같지만 언론사도 신문과 광고지면을 팔아 수익을 내 운영하는 기업임에 틀림이 없다. 마케팅이 내리막길로 치닫고 불건전한 적자가 지속돼서는 돈과 정치의 권력 앞에서 바른 논평과 보도를 유지하기 어렵다.

옴부즈맨 제도는 제4부 이상의 역할을 하는 한국언론이 계속 고민하고 확충해 나가야 할 영역이다.

황호택<기획팀장>hthwa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